단조로운 삶/ 빤냐완따 스님

관리자
2022-11-20
조회수 272

무성하던 나뭇잎들이 바람에 흩날립니다. 온갖 종류의 단풍잎들이 오솔길을 덮습니다. 여름 내내 스며들지 못했던 햇빛이 숲속을 환하게 비춥니다. 잎이 성근 나뭇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도 보입니다. 


지난 여름 힌남노 태풍 때문에 조금 더 기울어진 듯한 참나무, 꺽인 가지를 매달고 서있는 박달나무, 산불을 견뎌낸 등굽은 소나무 등  온갖 풍상 다 겪은 나무들이 비탈진 등성이에 가을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가을숲은 이미 겨울 준비를 마쳤습니다. 야생의 화초들은 뿌리만 남긴 채 푸른 잎을 모두 버렸고, 산비탈의 나무들은 혹한을 견디기 위해 여름 내내 그토록 무성했던 잎들을 남김없이 내려놓았습니다. 


잎이 진 숲속에서 숲의 진면목을 봅니다. 내려놓으며 살아가는 법을 생각합니다. 사철 푸른 나무에게서 한결같은 마음을, 곧게  뻗은 나무로부터 대쪽같은 절개를, 휘어진 맹문동잎을 보며 막히면 돌아가는 법을 턱득합니다. 


세상만물 가운데 마음이 있는 존재를 유정물이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유정물이 바로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탁월한 지성과 섬세한 감성을 기반으로 하여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건설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 문명 속에서 많은 것들을 소비하며 살아갑니다. 필요 이상으로 소비하면서 살아갑니다. 지구자원을 고갈시키고 생태계를 무너뜨리면서 밤낮없이 소비하며 살아갑니다. 


세상에는 꼭 필요한 소비가 있는가 하면 불필요한 소비도 많습니다. 가령 지하 1,2층 주차장을 가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합니다. 아파트 2,3층 올라갈 때도 습관적으로 승강기 버튼을 누릅니다. 


사람들은 집안에 많은 것들을 쌓아놓고 살아갑니다. 현관문을 들어서면 가장 눈에 뛰는 것이 신발장입니다. 7~8칸의 공간 안에 네 식구의 신발이 계절별 용도별 디자인별로 수십 켤레 놓여 있는 것을 본 적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옷이 얼마나 많은 지 옷장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옷장앞에 길이가 2m쯤 되어보이는 바퀴 달린 옷걸이를 갖다 놓았습니다. 긴 파이프 하나에 수십 벌의 옷이 곧 무너져내릴 듯 위태롭게 걸려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느 불자가정을 방문했다가 본의 아니게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육해공 산해진미 온갖 식자재가 냉동ㆍ냉장칸에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참으로 풍족해 보였습니다. 지구 어디에선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고 있지만. 


현대인들은 풍부한 먹거리, 입을거리, 안락한 주거시설 등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또한 각종 교통수단과 정보통신망의 발달로 지구 어디라도 갈 수 있고, 세상의 그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대의학은 이미 오래전에 심장을 이식하는데 성공했고, 백혈병 등 각종 암 치료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해 평균기대수명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줄기세포 이식을 통한 무릎연골 재생과 임플란트 시술의 보편화는 삶의 질을 한층 격상시켰습니다. 


손바닥만한 스마트폰 속에는 이미 은행이 들어서 있고, 온갖 가상마트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습니다. 앱 하나만 클릭하면 무엇이든 살 수 있는 편리함 때문에 현대인들은 예전보다 더 많은 것들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은 하나같이 소중합니다. 버릴 게 전혀 없어 보입니다. 특히 오랜 세월을 함께 했거나 사연이 깃든 물건에는 더욱 애착이 갑니다. 그래서 집안 구석구석에는 옛것과 새것이 자리다툼하듯 쌓여만 갑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않될 물건들이 있는가 하면 굳이 없어도 되는 것들 또한 적지 않습니다. 수납장 안에는 지금까지 단한번도 사용한 적 없는 물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쓰일 것이라 생각하면서 3년째 보관되어 있습니다. 


소유욕이 소유물을 낳습니다. 명예욕이나 자존심은 더 크고, 더 값지고, 더 화려하고, 더 고급스런 것들을 갈구합니다. 좀더 많은 것들을 소유함으로써 심리적 위안과 충족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 충족감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인간의 욕망ㆍ충족감은 밑빠진 항아리와도 같습니다. 자식ㆍ재산ㆍ건강ㆍ명예ㆍ체면 등에 대한 강한 집착은 반드시 정신적 고통을 수반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ㆍ물질적인 것들에 대해 끊임없는 소유욕을 일으킵니다. 


물질에 대한 소유욕은 생존을 위한 인간의 원초적 욕구입니다. 누나나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합니다. 확실한 소유를 위해 밤낮없이 경쟁합니다. 이마에 주름이 패이고 귀밑머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애를 씁니다. 


가진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고뇌가 뒤따릅니다. 유지하기 위해 밤낮으로 신경써야 하고,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하게 됩니다. 또한 그 소유물들을 영원한 나의 것으로 착각하여 집착하게 됩니다. 그로인해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의 상실감은 커다란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적게 가졌다고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것을 가졌다고 해서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천하를 얻은 군주라 할지라도 자기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해 고통 받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물질적 풍요로움에 있지 않습니다. 


죽만 먹고 살아도 행복한 사람이 있고, 매일 진수성찬을 받으며 살아도 불행한 사람이 있습니다. 물질의 많고 적음이 행ㆍ불행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행ㆍ불행이 결정됩니다. 


5계를 지키는 가운데 주어진 여건에 불평불만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 작은 것에도 만족해 하며 감사할 줄 아는 사람, 검소하되 결코 인색하지 않고 베품과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행복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습니다.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이 일어날 때 행복의 싹이 돋아납니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의 생활은 검소합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의 생활은 소박합니다. 나눌 줄 아는 사람의 마음은 늘 풍요롭고 행복합니다. 5계를 실천하면서 매순간 깨어있는 삶을 사는 사람의 생활은 늘 검소하고 소박하고 단조롭고 평화롭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단조롭고 검소하게 사는 사람은 비구일 것입니다. 비구에게 있어 개인 소유물은 오직 밥그릇(발우) 한 개, 가사 한 벌(아랫가사ㆍ윗가사ㆍ겹가사), 그리고 깔개 정도입니다. 그 외에는 어떤 것도 소유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 규정된 1세트의 가사와 탁발 받은 음식만을 의지해서 살아가게끔 규정되어 있습니다. 거주처는 비를 피할 수 있는 동굴이나 나무 밑 혹은 한시적으로 머물 수 있는 공공의 수행처소가 전부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삼시 세끼는 기본이고 간식도 먹고 새참도 먹고 군것질도 합니다. 하루 24시간 가운데 음식물을 조리하고 먹고 설거지하는데에 상당시간을 할애합니다. 그러나 비구는 조리된 음식을 얻어 단 한 차례 한 끼 식사만을 합니다. 


이 얼마나 검박하고 단조롭습니까? 3의 1발, 1일 1식 그것이 과연 가능하냐고요. 물론입니다. 예전에  3의 1발 만을 의지한 채 인도와 스리랑카를 2년 동안 유행한 적 있었습니다. (깔개 하나, 양은 스푼 1개, 수건 1장, 치약 칫솔, 그리고 약간의 달러와 여행 안내서 1권) 


인도 붓다가야에서 우기안거를 마치고 유행을 시작하였는데 탁발을 못해 굶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기차 역사 한모퉁이에서 신문지 깔고 대가사를 이불삼아 잠든 날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지만 결코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스승님을 시봉하거나 절 소임을 맡다보니 개인 살림살이가 하나 둘씩 늘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출가의 삶일지라도 소임을 맡으면서 한곳에 오랫동안 정주하다보면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또한 사물이 주는 편리함 때문에 그 사물에 집착하게 됩니다. 집착이 집착인 줄 모르기 때문에 점점 더 애착하게 됩니다. 그 애착심은 삼매를 성글게 하고 온갖 번뇌를 불러일으켜 차츰 수행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그때는 여지없이 떠납니다. 인도ㆍ스리랑카ㆍ미얀마ㆍ태국 등지의 테라와다 수행처로 피난을 떠납니다. 한 철 혹은 두 철 정도 탁발생활 하다보면 탐착심이 사라지고 성글었던 삼매가 다시 촘촘해지면서 초심으로 돌아갑니다. 


정처없이 떠돌다 정착한 지 어느덧 7년이 되어 갑니다. 7년 전 이맘때 이곳 컨테이너 꾸띠에는 바루 하나, 가사 몇 벌, 겨울 내복 한 벌, 등산화 한 켤레, 그리고 책 몇 권이 전부였는데,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살림이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불자님들과 함께 사용하는 물품, 가령 냉장고ㆍ식기ㆍ전자렌지ㆍ난로ㆍ테이블ㆍ의자 등을 제외한 온갖 서적 비품 개인 생활용품들이 작은 공간안에 빈틈없이 쌓여져 있고 앞으로도 계속 쌓여갈 것만 같습니다. 


니까야 경전은 물론 보시 받은 온갖 책들이 읽히지도 않은 채 좁은 꾸띠안에서 작은 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그리고 3의 1발 이외에 한 벌 두 벌 쌓여가고 있는 여벌의 가사와 발우들... (여벌의 가사와 발우는 포기 게송과 함께 이미 마음으로 내려놓은 상태라 임시로 보관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리고 각종 법회행사 때 보시받은 불자들의 정성이 담긴 각종 물품들 역시 너무 아껴쓰다 보니 다 사용되지 못한 채 계속 쌓여가고 있습니다. 가령 가사 안에 받쳐입는 자주색 반팔티, 양말, 방한용 내의, 다양한 종류의 신발, 세면도구, 의료용품 등등.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습관적으로 모아두거나 오래 묵혀두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정말 좋지 않은 습관입니다. 오래 가지고 있으면 집착이 생겨납니다. 많을 때는 나누는 것이 상책입니다. 주로 공부하는 젊은 스님이나 형편이 어려운 스님에게 나눠드립니다. 


혹은 꼭 필요한 분을 찾아가 나눠드리기도 합니다. 가능하면 그때 그때 나눕니다. 철이 바뀌도록 사용하지 못한 것은 무조건 나눕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스님들의 왕래가 종종 있다보니 잘 나누었는데 요 몇년새 남는 물품들을 보관만 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물질은 가만히 있는데 마음이 물질에 이끌립니다. 좋은 것은 갖고 싶고, 맛있는 음식은 더 먹고 싶습니다. 매순간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마음은 물질에 끌려다닙니다. 물질에 얽매이는 순간 정신은 물질의 노예가 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의식주 생활을 하며 살아갑니다. 옷(의복)은 의식주 가운데 대표적인 물질입니다. 옷은 일상을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않될 필수품입니다. 그래서 의류매장에는 항상 옷을 사려는 사람들로 붑빕니다. 


옷(가사)는 다음과 같은 기능을 합니다. 우선 몸을 가려줍니다. 비바람과 태양열을 막아주고 추위로부터 몸을 따뜻하게 감싸줍니다. 그리고 파리와 모기 등 온갖 해충들로부터 피부를 보호해 줍니다. 이것이 옷의 본질적인 기능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옷의 본질적 기능보다는 외형에 집착합니다. 화려하고 세련된 옷, 값비싼 옷, 유명 브랜드 제품, 남보기에 좋은 옷을 선호합니다. 옷의 본질적 기능을 생각하며 자신을 위해 입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입습니다. 


신발은 발을 보호하기 위해 신고, 그릇은 음식을 담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신발에는 발의 보호와는 전혀 상관없는 온갖 문양과 장식물이 들어가 있고, 그릇 또한 온갖 형태의 문양이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문양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모양에도 구애받지 않습니다. 오직 본질적인 기능만을 생각합니다. 또한 주어진 물건에 대해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관념을 갖지 않습니다. 이것은 공공의 물건이요, 잠시 빌려 쓰는 물건이라 생각합니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보시받은 물품을 사용할 때 보시자의 고귀한 정성을 생각합니다. 보시공덕이 더욱 증장되도록 마음 속으로 축원합니다. 그 공덕이 더욱 빛을 발하도록 더욱 열심히 정진할 것을 다짐합니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사치하지 않고, 멋부리지 않고, 화려하지 않고 언제나 근검절약하며 소박하고 단조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남을 탓하거나 비방하거나 화내는 법이 없으며, 자애와 연민심으로 상대방을 감싸줍니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있다고 좋아하거나 없다고 싫어하지 않습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만족하며 살아갑니다. 주면 받고 주지 않으면 받지 않습니다. 주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경우라도 취사선택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태어날 때 전생의 업 외에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갈 때 또한 여러분들은 자기가 지은 업 이외에 그 어떤 것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일평생 애지중지하던 자신의 몸둥아리조차도 포기해야 하는 판국에 돈ㆍ명예ㆍ지식ㆍ가족 그 어떤 것인들 가져갈 수 있겠습니까? 


모든 천상과 인간의 위대한 스승 부처님께서도 온갖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출가사문이 되어 오직 3의 1발에만 의지한 채 일생을 검소하게 사셨습니다. 쿠식나가라에 이르러 전법의 걸음을 멈추신 부처님께서는 사라나무 밑에 상갓띠(대가사)를 네 겹으로 접어서 까신 다음 늙으신 육신을 눕힌 뒤 마침내 다시는 태어남이 없는 대열반에 드셨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제자들은 물질을 대할 때 모양에 집착하지 말고, 이름에 집착하지 말고, 항상 깨어있는 마음으로 대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좋다 싫다 분별하지 말고, 밉다 곱다 차별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수용해야 합니다. 


생활은 언제나 검소하고 소박하고 단조로와야 합니다. 쓸데없는 말을 삼가하고, 꼭 필요하지 않은 만남은 가능한 자제하고,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일은 가능한 벌리지 말고, 오감을 자극하는 것들을 찾아 헤매지 말고, 사소한 일에 매달려 에너지를 낭비해서는 않됩니다. 


그 단조로운 삶 속에서 물질적ㆍ정신적 대상과 접촉할 때는 언제나 그 속에서 무상한 성품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현상의 본질인 무상ㆍ고ㆍ무아의 진리를 볼 수 있도록 관찰해야 합니다. 진정한 즐거움ㆍ행복은 밖에 있지 않습니다. 대상을 바라보고 있는 이 마음 안에 있습니다. 


팔정도(계,정,혜)를 닦는 마음 속에 진정한 행복이 있고, 온전한 평화가 있고, 궁극의 해탈ㆍ열반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담마 따라서 부지런히 정진하여 고통의 온전한 소멸에 이르시길 기원합니다. 


               * 


   불멸 2566.11.19

   천림산 기슭에서 

   메따와 함께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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