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온(五蘊) 수행 》4/ 빤냐완따 스님

관리자
2022-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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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행온(行蘊, 형성의 다발, 형성된 것들의 무더기)


'행(行)'은 빨리어로 'Saṅkhārā (상카-라-)' 입니다. Saṅkhārā는 Sam(함께) + Karoti(행하다ㆍ세우다ㆍ짓다)의 합성어인 Samkaroti의  명사형입니다.  Saṅkhārā는 불교의 핵심 가르침을 설명할 때 나타나는 용어 가운데 가장 다의(多意)적으로 사용되는 어휘입니다.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쓰이기 때문에 하나의 번역어휘만으로는  Saṅkhārā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빨리어 Saṅkhārā에 대해 한자문화의 영향을 받은 한국의 경우 예전에는 관례적으로 '행하다'는 의미를 지닌 '行'으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최근 빨리어 원전을 택스트로 삼아 연구하고 있는 초기불교전공자들은 'Saṅkhārā-khandha(行蘊)'를 '형성된 것들의 무더기ㆍ심리현상들의 무더기ㆍ의도적 행위의 무더기' 혹은 '형성의 다발ㆍ형성된 것들의 다발' 등으로 옮겨 쓰고 있습니다. 전자는 빨리어 경장과 논장과 주석서 등에 기반한 번역이고, 후자는 빨리어 경전에 충실한 번역으로 보여집니다.


전자에 대한 설명은 초기불전연구원 역  [상윳따니까야]의 해제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Saṅkhārā(상카-라-)'의 의미를 초기경의 문맥과 이비담마 주석서를 통해 파악하고 있습니다. 즉,


"(1) '제행무상(諸行無常) 제행개고(諸行皆苦)'의 문맥에서 '제행(諸行)'으로 나타나는데 항상 복수로 쓰인다. 이 경우의 '제행(諸行)'은 '유위법(有爲法)'을 뜻한다. 즉, 열반을 제외한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모든 유위법들을 행(行)이라 불렀다. 이때의 행(行)은 형성된 것들에 가까운 뜻이다. (2) <오온>의 네 번째인 행온(行蘊)으로 나타나는데 <오온> 가운데서 색(色)은 아비담마의 색법(色法)이고, 수상행(受想行)은 심소법(心所法), 식(識)은 심법(心法)이다. 그러므로 행(行)은 아비담마의 52심소법 가운데서 느낌[受]과 인식[想]을 제외한 나머지 50가지, 즉 감각접촉 의도 주의 집중 등의 유익하고 해로운 심리현상들 모두를 포함한다. (3) 12연기에서 행(行)은 두번째 구성요소인 무명연행(無明緣行, 즉 무명을 조건으로 行이 일어남)으로 나타나고,  [청정도론]에서 '공덕이 되는 행위ㆍ공덕이 되지 않는 행위ㆍ흔들림 없는 행위' 로 설명되듯이 행(行)은 '업지음' 혹은 '의도적 행위' 로 해석됩니다. (4) 행(行)은 몸[身]ㆍ말[口]ㆍ마음[意]으로 짓는 세 가지 행위, 즉 '身行(Kayā-Saṅkhārā)ㆍ口行(Vaci-Saṅkhārā)ㆍ意行(Mano-Saṅkhārā)' 으로 나타나는데 이때의 행(行)이 '의도적 행위' 로서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과 동의어가 됩니다."


한편 후자의 경우는 한국빠알리성전협회 역 [맛지마 니까야] 해제 부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불교술어 가운데 번역하기 가장 힘들고 난해한 용어가 'Saṅkhārā' 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 'Saṅkhārā' 의 현대적 번역에는 '결정ㆍ구성ㆍ결합ㆍ형성ㆍ의도' 가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것이 '형성' 이다. (1) 십이연기에서의 '형성'은 무지나 갈애와 관련하여 윤회를 지속시키는 능동적이고 의도적인 형성이다. 여기서 '형성'은 업(業, Kamma)과 동의어이고 세 가지가 있다. 즉 '신체적 형성ㆍ언어적 형성ㆍ정신적 형성' 이다. (2) 다섯 가지 존재의 다발 <오온>에서 '형성'은 다섯 가지 감각기관에 대한 '의도'로서 분류된다. 이때의 '형성'은 '의도'로서, 느낌과 지각 이외의 의식의 정신적 동반자는 모두 '형성' 이라고 한다. (3) '형성'은 가장 넓은 의미로 '조건지어진 것'을 뜻한다. '형성' 이라는 말은 우주전체가 조건지어진 것이 라는 철학적인 조망을 할 수 있는 주춧돌이 된다.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일체개고(一切皆苦)의 '제행'과 '일체'는 바로 이 '형성'을 말하는 것이다. (4) 지각(상)과 느낌(受)이 소멸한 자에 도달하려면 그 소멸의 순서는 신체적 형성, 언어적 형성, 정신적 형성이다. (5) 네 가지 신통의 기초(四神足)과 관련하여 정신적인 힘의 기초로서 '노력의 형성'이 있다. (6) 그 밖에 수명의 형성, 생명의 형성, 존재의 형성이 있다. (7) Saṅkhārā(상카-라-)가 의도에 의해서 활성화되는 능동적 조건으로 짓는 힘이라면, 수동태 Saṅkhata(상카따, 有爲)는 Saṅkhārā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존재의 다발이나 여섯 감역이나 조건지어진 현상세계를 의미한다."


이상에서  'Saṅkhārā(行)'의 의미에 대해 다양한 각도로 살펴보았습니다. 고따마 붓다께서는 인간 개개인의 존재양상을 <오온현상>으로 보았습니다. 12연기의 법칙은 <오온>의 끊임없는 윤회를 드러내고 있지만, 역으로 윤회의 사슬을 끊고 해탈에 이를 수 있음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Saṅkhārā' 는 <오온>의 구성요소 가운데 하나요, 12연기에서는 무명(無明, Avijjha)ㆍ갈애(渴愛, Tanha)와 함께 윤회를 일으키는 강력한 연결고리입니다. 'Saṅkhārā'는 '정신적 의도'ㆍ'의지작용'을 포함한 일체의 모든 '형성된 것들'을 의미합니다. Saṅkhārā는 과거(과거생)로부터 전이되어온 그  어떤 실체가 아니라 조건을 따라 일어나는 '정신적 의도(Cetana)나 그 의도에 의해서 활성화되는 조건짓는 힘' 을 뜻합니다. 6근이 6경을 만나 접촉인식이 생겨날 때 느낌ㆍ지각인식과 함께 '행동의 형성ㆍ언어의 형성ㆍ마음의 형성'이 시작됩니다. 이 형성은 그 형성을 지속하려는 '정신적 의도'와 그 의도에 의해 활성화되는 조건짓는 힘에 의해 유지됩니다. 고따마 붓다께서는 'Saṅkhārā-khandha(行蘊)'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것은 바로 '정신적 의도' 즉 '의도하는 마음' 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마음이 모든 법들(정신과 물질)을 계속 형성하게 하는 원천적 힘이라고 보셨습니다.


"마음이 모든 일에 앞장서 나아가고,

 마음이 모든 일의 주인노릇을 하며

 마음에 의해 모든 일이 만들어진다.

 만일 어떤 사람이 

 악한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한다면 

 괴로운 과보가 그를 뒤따를 것이다

 마치, 황소 뒤에 수레가 뒤따라가듯."

 

                                           [담마빠다] <제1번 게송>


Saṅkhārā(行, 형성)의 근원적 힘이라고 할 수 있는 '정신적 의도(앞서가는 마음)'에 대해서는 올 연초 법문 <마음이 모든 것을 선도한다>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다시 한번 읽어보시길 바라며, 중요한 몇 단락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음은 눈ㆍ눈ㆍ귀ㆍ혀ㆍ몸ㆍ마음(마노) 즉 6감각기관 중의 하나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 유일한 감각기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마치 마음은 거울과 같아 6근이 대상과 접촉하는 즉시 그 모든 것을 마음거울에 반영시키면서, 기쁨ㆍ 슬픔ㆍ불안ㆍ우울ㆍ노여움ㆍ탐욕ㆍ질투ㆍ자애ㆍ평온ㆍ행복감 등 온갖 심리현상들을 만들어 냅니다. 고따마 붓다께서는 "세상과 세상의 생겨남이 자신의 몸과 마음 안에서 이루어진다." 설하셨습니다. 즉, 눈과 형색,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감촉, 마음과 마음대상의 접촉에 의해 생겨난 일체의 현상들이 바로 이 세상인 것입니다.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감촉하고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세상은 형성되고, <오취온>이라는 5가지 집착의 무더기가 생겨납니다.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5가지 무더기를 <오온(색ㆍ수ㆍ상ㆍ행ㆍ식)> 이라고 하지요. 그 4번째가 바로 <행>입니다. 색(물질)ㆍ수(느낌)ㆍ상(지각인식)을 제외한 모든 심리활동을 총칭하여 <행온>이라고 합니다. <행온>은 업을 형성하기 때문에 <형성업>이라고도 부릅니다. 정신적 <의도>는 <행온>의 한 부분으로서 일생동안 행위의 대부분을 지배합니다. 그래서 <의도>에 대한 바른 이해는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의도>는 여러가지 마음요소들 가운데 가장 큰 결과를 가져다주는 매우 중요한 마음의 요소(작용)입니다. <업> 혹은 <형성업> 이라고도 합니다. <의도>는 신(신체행위)ㆍ구(언어행위)ㆍ의(생각 등 일체의 정신적 행위)가 행해질 때 가장 앞장서서 그 행위를 선도하는 마음입니다. 불교수행은 불선업을 지양하고 선업을 실천하면서 마음의 본성을 깨달아 마침내 생사해탈에 이르는 것입니다."


<오온 수행>에 있어서 'Saṅkhārā-khandha(行蘊)'에 대한 관찰은 바로 '정신적 의도' 나 '그 의도에 의해서 활성화되는 능동적으로 조건짓는 힘(형성력)을 바르게 보고 이해하는 것' 입니다. 행위하기 직전 그 행위를 이끌고 있는 '앞서가는 마음' 즉 '정신적 의도'가 어떻게 생겨났다 사라지는지를 알아차림해야 하며, 행위하고 있는 동안 그 형성력이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어떤 조건일 때 작용을 멈추는지 주의깊게 알아차림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오온>이 끊임없이 형성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색온ㆍ수온ㆍ상온ㆍ행온ㆍ식온을 계속해서 형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신적 의도'는 형성된 것을 계속 형성된 것이게끔 하는 가장 중요한 마음작용입니다. '정신적 의도'는 '행온(行蘊, 형성의 다발, 심리현상들의 무더기)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온 수행>에 있어서 '행온(行蘊)'에 대한 관찰은 바로 이 '정신적 의도'에 대한 알아차림 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의도(Cetana)'는 행위하기 전에 반드시 선행하는 정신작용으로서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심리현상입니다. 초심자가 '정신적 의도'를 분명하게 알아차림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설령 알아차림 하더라도 대부분 선명하지 않고 어름어름 아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산란한 마음이 가라앉고 집중된 마음으로 <오온현상>(몸과 마음)을 관찰하다 보면 어느 순간 희미했던 대상들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좌선을 시작할 때는 대부분 호흡의 들숨ㆍ날숨에 대한 감각을 알아차림 합니다. 행선할 때는 발의 들고 가고 놓는 감각을 알아차림 합니다. 그 감각들을 알아차림 하다보면 4대의 고유한 성질이 드러납니다. 인습적 명칭으로서의 흙 물 불 바람이 아니라, 지수화풍의 고유한 성질입니다. 물질의 고유한 성질을 여실히 보고 이해하고 나면 마음을 볼 수 있는 힘이 생겨납니다. 이 힘으로 몸과 마음을 관찰하다 보면  어느날 문득 행위하기 직전 그 행위에 선행하고 있는 마음을 보게 됩니다. 어름어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컬러사진을 보는 것처럼, 캄캄한 동굴에 밝은 전등불이 켜진 것처럼 순간적으로 환하고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마침내 그 수행자는 '의도'라고 하는 마음의 작용을 실재로 보게 된 것입니다. 


즉, <오온 수행>에 있어서 'Saṅkhārā-khandha(行蘊)에 대한 관찰수행'이 시작된 것입니다. 호흡이 24시간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지속되는 것처럼, <오온>은 앉아있을 때나 서있을 때나 누워있을 때나 걸어가고 있을 때에도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결정적 심리작용이 바로 Saṅkhārā(行)입니다. Saṅkhārā(行)는 크게 다음의 3가지로 구분해 관찰할 수 있습니다. 즉 신체적 행위의 상카-라( Kāya-Saṅkhārā), 언어적 행위의 상카-라(Vaci-Saṅkhārā)가 정신적 행위의 상카-라(Mano-saṅkhāra) 입니다. 사람들은 평생동안 이 3가지 행위를 하며 살아갑니다. 그 행위가 선행(善行, Kusala)일 수도 있고, 악행(惡行, Akusaia)일 수도 있고,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세 가지 행위를 '업(業,  Kamma)라고 합니다. 이 3가지 업은 오직 신체(身)ㆍ언어(구)ㆍ마음(意) 통해서만 지을 수 있습니다. <오온 수행>,  <행온(行蘊)에 대한 관찰수행>은 알아차림이라는 마음의 눈으로 신구의(身, 口, 意) 라는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들여다봄으로 말미암아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정신적 의도를 알아차림할 수 있고, 선한 의도가 일어나는지 불선한 의도가 일어나는지를 알아차려서 불선행은 그치고 선행은 계속 유지할 수도 있습니다. 그 수행자는 악행을 저지르지 않으므로 4악처에 떨어지질 일 없고, 선업공덕을 쌓아 선처에 날 것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선업, 악업, 그 중간업이 모두 윤회의 근거가 되므로 열반을 향해 나가는 수행자라면 선업ㆍ불선업ㆍ중간업을 초월하여 신구의를 통해 그 어떤 없도 짓지 않으니 그는 이미 대상을 놓아버렸고, 대상에 대해 집착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니 이제 그 수행자에게 더이상의 '형성(Saṅkhārā)은 없습니다.


우리가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할 때 그 3가지 행위에는 반드시 '의지'가 선행합니다. 그 의지를 '정신적 의도'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정신적 의도 뿐만아니라 그 의도에 자극받은 조건짓는 힘이라고 할 있습니다. 수행을 하다보면 차츰 들끓던 마음이 가라앉고 감관이 고요해면서 알아차림 의식이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새벽녘 의식이 알아차림과 함께 잠에서 깨어납니다. 첫눈을 뜰 때 눈꺼풀이 눈동자 위로 미끌어져 올라갑니다. 여명 속에서 꾸띠안의 물체들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세수할 때  물의 차가움과 축축한 감각, 얼굴과 손의 스침과 당겨짐. 법당향로에 향을 꽂을 때 향이 향로속의 재와 접촉하는 감각. 절을 하고, 찬팅을 하고, 탁발 나갔다 돌아와 씻고 공양을 하고 차를 미실 때도 알아차림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하루종일 대상과 대상을 아는 마음이 한쌍이 되어 움직입니다. 지금까지의 알아차림이 의도적 주의집중에 의한 인위적인 것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알아차림입니다. 문득 행위가 바뀌는 순간 혹은 행위가 끝날 때 그 행위의 끝에서 어렴풋이 정신적 형성과 물질적 형성의 소멸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그와는 반대로 어떤 때는 말하거나 행동하거나 생각을 지어갈 때 달라붙어서 끝끝내 떨어질 줄 모르는 찰거머리 같은 것들을 보기도 합니다.


눈이 시각대상을 만나면 시각인식과 함께 시각이 형성됩니다. 귀가 청각대상을 만나면 청각인식과 함께 청각이 형성됩니다. 코가 후각대상을 만나면 후각인식과 함께 후각이 형성됩니다. 혀가 미각대상을 만나면 미각인식과 함께 각각이 형성됩니다. 몸이 촉각대상을 만나면 촉각인식과 함께 촉각이 형성됩니다. 마음이 마음대상을 만나면 마음인식과 함께 마음이 형성됩니다. 눈의 시각이 시각대상을 떠나면 시각형성이 소멸합니다. 귀의 청각이 청각대상을 떠나면 청각형성이 소멸합니다. 코의 후각이 후각대상을 떠나면 후각형성이 소멸합니다. 혀의 미각이 미각대상을 떠나면 미각형성이 소멸합니다. 몸의 촉각이 촉각대상을 떠나면 촉각형성이 소멸합니다. 마음이 마음대상을 떠나면 마음형성이 소멸합니다. 마음의 형성이 소멸하면 지각인식의 형성이 소멸 하고, 지각인식의 형성이 소멸하면 느낌의 형성이 소멸합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왜 형성작용이라 부르는가? 형성된 것을 계속해서 형성한다고 해서 형성작용이라 하느니라. 그러면 어떻게 형성된 것을 계속해서 형성하는가? 물질적 요소가 물질적 요소이게끔 형성된 것을 계속해서 형성하느니라. 감수작용이 감수작용이게끔 형성된 것을 계속해서 형성하느니라. 지각작용이 지각작용이게끔 형성된 것을 계속해서 형성하느니라. 형성작용이 형성작용이게끔 형성된 것을 계속해서 형성하느니라. 식별작용이 식별작용이게끔 계속해서 형성하느니라. 비구들이여, 그래서 형성된 것을 계속해서 형성한다고 해서 형성작용이라 하느니라."

                                      [S22:79] <Khajjaniya-sutta(삼겨버림 경)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Saṅkhārā'(行, 형성된 것들, 심리현상들)인가?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의도의 무리가 있나니 형색에 대한 의도, 소리에 대한 의도, 냄새에 대한 의도, 맛에 대한 의도, 감촉에 대한 의도, 법에 대한 의도이니라.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Saṅkhārā 라고 하느니라.


감각접촉이 일어나기 때문에 Saṅkhārā가 일어나고,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Saṅkhārā가 소멸하느니라.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 [팔정도]가 Saṅkhārā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니 그것은 바른견해, 바른 생각, 바른 언어, 바른 행위, 바른 생활수단, 바른 노력, 바른 알아차림, 바른 삼매이니라.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같이 Saṅkhārā를 최상의 지혜로 알고 Saṅkhārā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Saṅkhārā를 염오하고 Saṅkhārā에 대한 탐욕이 빛바래고 Saṅkhārā를 소멸하기 위해서 도를 닦는 자들은 이 법과 율에서 발판을 얻게 되느니라."

               [S22:56] <Upādānaparipavatta-sutta(취착의 양상 경)>


"비구들이여 .....

그는 철저한 검증을 하면서 이와 같이 꿰뚫어 아느니라. '의도적 행위들은 무명이 그 근원이며, 무명으로부터 일어나고, 무명으로부터 생기며, 무명으로부터 발생느니라. 무명이 있을 때 의도적 행위들이 있고 무명이 없을 때 의도적 행위들이 없다.'라고. 그는 의도적 행위들을 꿰뚫어 알고 의도적 행위들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의도적 행위들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의도적 행위들의 소멸과 일치함으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꿰뚫어 아느니라. 그는 여기에 준해서 도를 닦고 법에 따라서 실천하느니라.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비구는 모든 괴로움을 바르게 멸진하기 위해서, 의도적 행위들을 소멸하기 위해서 도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비구들이여, 

무명에 빠진 사람들이 만일 공덕이 되는 의도적 행위를 지으면 공덕이 되는 알음알이가 있게 되고, 만일 공덕이 되지 않는 의도적 행위를 지으면 공덕이 되지 않는 알음알이가 있게 되고, 만일 흔들림 없는 의도적 행위를 지으면 흔들림 없는 알음알이가 있게 되느니라. 비구들이여, 그러나 비구가 무명을 제거하여 명지가 생기면 그에게서 무명은 빛바래고 명지가 생기기 때문에 그는 공덕이 되는 의도적 행위도 짓지 않고 공덕이 되지 않는 의도적 행위도 짓지 않고 흔들림 없는 의도적 행위도 짓지 않게 되느니라.


의도적 행위를 짓지 않고 의도하지 않기 때문에 그는 세상에 대해서 어떤 것도 취착하지 않느니라. 취착하지 않으면 갈증 내지 않느니라. 갈증 내지 않으면 스스로 완전히 열반에  드느니라.. 그는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알게 되느니라."

    

                      [S12:51] <Parivimaṃsana-sutta(철저한 검증 경)>



     불멸 2565(6).  .  .

     천림산 기슭에서 

     자애와 함께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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