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 느낌(vedanaā-Khandha, 受蘊)
몸과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느낌이 따른다.
그러므로 느낌에 대한 알아차림 내지는 분명한 앎은 육체적, 정신적인 존재의 전체성을 파악하기 위한 중요한 대목이다. 느낌은 우리의 내부에서 마음의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들 중 중요한 부분으로 역할하기 때문에 느낌에 대한 우선적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느낌을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자.
첫째, 느낌은 감정적ㆍ정서적ㆍ예술적 근거가 되는 심리현상이다.
우리의 삶에서 경험되어지는 모든 것은 신체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인 안, 이, 비, 설, 신의 오근(五根)과 마음, 곧 의근(意根), 이 여섯 개의 감각의 문을 통해서 만난다. 이 여섯 가지 감각의 문에 어떤 대상이 접촉되면 신체와 마음의 현상이 일어나 곧 느낌이 발생한다. 그런데 처음 일어난 느낌은 맨 느낌, 혹은 날 느낌이다. 다시 말하면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중립의 느낌이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감정과 정서가 개입이 된다. 그런 다음 일어나는 느낌에는 경전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괴로운 느낌, 즐거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세 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 즐거운 느낌은 탐욕의 고질적인 잠재성향을 지니고 있고, 괴로운 느낌은 성냄과 적의의 고질적인 잠재성향을 지니고 있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무지의 고질적인 잠재성향을 지니고 있다.
둘째, 불교에서 강조하는 초선부터 제4선까지의 네 가지 선 혹은 본 삼매는 한마디로 느낌의 순화과정이라 표현할 수 있다.
초선에서는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 고찰(伺)이라는 언어적 사유와, 희열과, 행복한 느낌이 주요한 심리현상으로 드러난다. 제2선은 언어적 사유가 가라앉고 희열과 행복만이 있는 경지이고, 제3선은 희열이라는 강렬한 느낌도 가라앉고 고요함 속에서 잔잔한 행복이 적극적으로 드러나는 경지이며, 제4선은 행복까지도 가라앉고 평온이라는 괴롭지고 즐겁지도 않은 고결한 느낌이 마침내 전개된다.
<느낌 상윳따>의 몇몇 경에 의하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수승한 느낌으로 수행에서 얻어지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처럼 제4선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자면 삼매 체험이 없는 일반사람들이 평온과 관계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목수 빤짜깡가는 붓다께서는 괴로운 느낌과 즐거운 느낌의 두 가지 느낌만을 말씀하셨다고 주장한다.
셋째, 인식이 이념이나 사상을 더 중시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관계가 깊은 것이라 한다면 느낌은 감정과 정서와 예술과 편리함의 추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넷째, 그러나 느낌에 대한 붓다의 결론은 “느낌들이 참으로 거품과 같다.”(S22:95)는 것이다.
그래서 주석서는 “마치 거품이 조그마한 물에서 생겼다가 사라지고 오래 가지 않듯이 느낌도 그와 같다. 손가락 한 번 튀기는 순간에 10만 꼬띠(1조)개의 느낌들이 일어나고 사라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2.1.3. 상온(想蘊, sañña)
오온의 세 번째 항목은 지각(想. sañña)이다.
지각(인식)이란 간한하게 말하자면 ‘관념 혹은 개념활동’이다. 사람이 대상에 대해 여러 상(相), 예를 들면 대상에 대해 푸르고 누름, 길고 짧음, 남녀, 즐겁고 괴로움 등의 상(相)에 집착해서 여러 명언(名言)개념을 형성하는데 이것을 ‘상(想)’이라 한다. 실로 이 상(想)으로 사물의 표상과 개념을 표시한다. 그러면 지각(인식)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오온의 두 번째인 느낌이 감정적이고 정서적이며 예술적인 심리현상들(행)의 단초가 되는 것이라면, 지각은 지식이나 철학이나 사상이나 이념과 같은 우리의 이지적인 심리현상들의 밑바탕이 되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perception으로 정착이 되었다.
둘째, 느낌은 닦아서 순차적으로 정화되어 가는 것이지만 지각(인식)은 단박에 전환이 가능하다.
그래서 인식을 비롯한 이지적 심리현상들은 실체 없음을 보는 순간 단박에 전환이 가능하므로 견도(見道, dassana-magga)라 하고, 느낌에 바탕한 탐욕이나 성냄과 같은 감정적 심리현상들은 실체 없음을 본다하더라도 바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닦아서 점차적으로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수도(修道, bhavana-magga)라 한다. 이것은 남방 상좌부와 북방 설일체유부에서 꼭 같이 강조하는 것이고, 유식에서는 소지장과 번뇌장으로 계승이 되었으며, 선종에서 돈오돈수냐 돈오점수냐 하는 오랜 논쟁으로 발전하였다.
셋째, 감정과 정서와 예술과 편리함의 추구와 관계있는 느낌이 자본주의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다면 인식(想)은 이념이나 사상을 더 중시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관계있다고 할 수 있다.
넷째, 잘못된 지각(인식)은 버려야 한다.
지각(인식)은 대상을 표상으로 받아들여 언어 작업을 통하여 이름 짓고 개념을 일으키는 작용이다. 그런데 이런 개념작용은 또 무수한 집착을 야기하고 해로운 심리현상들(不善法)을 일으키기 때문에 초기 경의 여러 문맥에서 인식은 부정적이고 극복되어야 할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래서 ‘희론하는 인식’(M12 등)을 가지지 말 것을 초기 경들은 강조하고 있다.
다섯째, 붓다는 닦아야 할 인식으로 ‘무상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초기 경에는 버려야할 고정관념으로서의 인식만이 아니라 깨달음을 증득하고 해탈ㆍ열반을 실현하기 위해서 개발하고 닦아야 하는 인식도 있다. 특히 <앙굿따라 니까야>에는 수행자들이 닦아야 할 여러 가지 조합의 인식들이 있다.
여섯 째, 인식은 초기불전에서 실체 없는 신기루(S22:95)에 비유되어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아니 진아니 대아니 영혼이니 일심이니 하는 잘못된 인식이나 고정관념을 버리고, 이런 인식은 참으로 ‘텅 비고 공허하고 실체가 없는 것’(S22:95)을 분명하게 알아 마침내는 인식이 무상이요, 고통이요, 무아임을 통찰하여 염오-이욕-해탈을 완성해야 할 것이다.
2.1.4. 행온(行蘊, saṅkhara)
오온의 네 번째 항목은 행(行)이다.
‘수(受)’ ‘상(想)’을 제외한 모든 심리적 활동을 총칭하여 행온이라 한다. 이 행온이 업(業)을 형성하는 것이다. 한국불자들은 여태까지 오온의 행온도 의도적 행위 혹은 의도 그리고 업 형성(력) 등으로 이해하고 있는 경향이 많은데, 이것은 행온의 한 부분인 의도(cetana) 만을 부각시킨 역어일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주석서와 복서에 의하면 행온에는 이 의도를 포함한 50가지 심리현상들(느낌과 인식을 제외한 모든 심리현상, 혹은 심소법)들을 다 포함한다고 말하고 있다.
2.1.5. 식온(識薀, viññāna, 알음알이)
오온의 다섯 번째 항목은 식온(識薀)이다.
여러 초기불전에서 ‘식별(識別, 了別)한다고 해서 알음알이라 한다’고 식온을 정의하고 있다. viññāna는 vi(분리해서)+√jna(알다)에서 파생된 명사인데 영어로는 conciou sness 로 정착되었다.
‘식(識)’은 ‘요별(了別)해 낸다’라는 의미이다. ‘요(了)’는 ‘알아낸다’는 뜻이고 ‘별(別)’은 ‘분별’을 뜻한다. 그러므로 ‘식(識)’은 대상에 대해서 ‘분별하여 알아낸다’는 의미로서 지각, 인식(認識)의 활동과 그 결과이다. 또한 이것은 감성(感性)인식과 이성(理性)인식의 활동과 내용을 포함하는 것이다.
2.1.2. 느낌(vedanaā-Khandha, 受蘊)
몸과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느낌이 따른다.
그러므로 느낌에 대한 알아차림 내지는 분명한 앎은 육체적, 정신적인 존재의 전체성을 파악하기 위한 중요한 대목이다. 느낌은 우리의 내부에서 마음의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들 중 중요한 부분으로 역할하기 때문에 느낌에 대한 우선적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느낌을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자.
첫째, 느낌은 감정적ㆍ정서적ㆍ예술적 근거가 되는 심리현상이다.
우리의 삶에서 경험되어지는 모든 것은 신체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인 안, 이, 비, 설, 신의 오근(五根)과 마음, 곧 의근(意根), 이 여섯 개의 감각의 문을 통해서 만난다. 이 여섯 가지 감각의 문에 어떤 대상이 접촉되면 신체와 마음의 현상이 일어나 곧 느낌이 발생한다. 그런데 처음 일어난 느낌은 맨 느낌, 혹은 날 느낌이다. 다시 말하면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중립의 느낌이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감정과 정서가 개입이 된다. 그런 다음 일어나는 느낌에는 경전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괴로운 느낌, 즐거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세 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 즐거운 느낌은 탐욕의 고질적인 잠재성향을 지니고 있고, 괴로운 느낌은 성냄과 적의의 고질적인 잠재성향을 지니고 있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무지의 고질적인 잠재성향을 지니고 있다.
둘째, 불교에서 강조하는 초선부터 제4선까지의 네 가지 선 혹은 본 삼매는 한마디로 느낌의 순화과정이라 표현할 수 있다.
초선에서는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 고찰(伺)이라는 언어적 사유와, 희열과, 행복한 느낌이 주요한 심리현상으로 드러난다. 제2선은 언어적 사유가 가라앉고 희열과 행복만이 있는 경지이고, 제3선은 희열이라는 강렬한 느낌도 가라앉고 고요함 속에서 잔잔한 행복이 적극적으로 드러나는 경지이며, 제4선은 행복까지도 가라앉고 평온이라는 괴롭지고 즐겁지도 않은 고결한 느낌이 마침내 전개된다.
<느낌 상윳따>의 몇몇 경에 의하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수승한 느낌으로 수행에서 얻어지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처럼 제4선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자면 삼매 체험이 없는 일반사람들이 평온과 관계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목수 빤짜깡가는 붓다께서는 괴로운 느낌과 즐거운 느낌의 두 가지 느낌만을 말씀하셨다고 주장한다.
셋째, 인식이 이념이나 사상을 더 중시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관계가 깊은 것이라 한다면 느낌은 감정과 정서와 예술과 편리함의 추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넷째, 그러나 느낌에 대한 붓다의 결론은 “느낌들이 참으로 거품과 같다.”(S22:95)는 것이다.
그래서 주석서는 “마치 거품이 조그마한 물에서 생겼다가 사라지고 오래 가지 않듯이 느낌도 그와 같다. 손가락 한 번 튀기는 순간에 10만 꼬띠(1조)개의 느낌들이 일어나고 사라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2.1.3. 상온(想蘊, sañña)
오온의 세 번째 항목은 지각(想. sañña)이다.
지각(인식)이란 간한하게 말하자면 ‘관념 혹은 개념활동’이다. 사람이 대상에 대해 여러 상(相), 예를 들면 대상에 대해 푸르고 누름, 길고 짧음, 남녀, 즐겁고 괴로움 등의 상(相)에 집착해서 여러 명언(名言)개념을 형성하는데 이것을 ‘상(想)’이라 한다. 실로 이 상(想)으로 사물의 표상과 개념을 표시한다. 그러면 지각(인식)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오온의 두 번째인 느낌이 감정적이고 정서적이며 예술적인 심리현상들(행)의 단초가 되는 것이라면, 지각은 지식이나 철학이나 사상이나 이념과 같은 우리의 이지적인 심리현상들의 밑바탕이 되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perception으로 정착이 되었다.
둘째, 느낌은 닦아서 순차적으로 정화되어 가는 것이지만 지각(인식)은 단박에 전환이 가능하다.
그래서 인식을 비롯한 이지적 심리현상들은 실체 없음을 보는 순간 단박에 전환이 가능하므로 견도(見道, dassana-magga)라 하고, 느낌에 바탕한 탐욕이나 성냄과 같은 감정적 심리현상들은 실체 없음을 본다하더라도 바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닦아서 점차적으로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수도(修道, bhavana-magga)라 한다. 이것은 남방 상좌부와 북방 설일체유부에서 꼭 같이 강조하는 것이고, 유식에서는 소지장과 번뇌장으로 계승이 되었으며, 선종에서 돈오돈수냐 돈오점수냐 하는 오랜 논쟁으로 발전하였다.
셋째, 감정과 정서와 예술과 편리함의 추구와 관계있는 느낌이 자본주의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다면 인식(想)은 이념이나 사상을 더 중시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관계있다고 할 수 있다.
넷째, 잘못된 지각(인식)은 버려야 한다.
지각(인식)은 대상을 표상으로 받아들여 언어 작업을 통하여 이름 짓고 개념을 일으키는 작용이다. 그런데 이런 개념작용은 또 무수한 집착을 야기하고 해로운 심리현상들(不善法)을 일으키기 때문에 초기 경의 여러 문맥에서 인식은 부정적이고 극복되어야 할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래서 ‘희론하는 인식’(M12 등)을 가지지 말 것을 초기 경들은 강조하고 있다.
다섯째, 붓다는 닦아야 할 인식으로 ‘무상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초기 경에는 버려야할 고정관념으로서의 인식만이 아니라 깨달음을 증득하고 해탈ㆍ열반을 실현하기 위해서 개발하고 닦아야 하는 인식도 있다. 특히 <앙굿따라 니까야>에는 수행자들이 닦아야 할 여러 가지 조합의 인식들이 있다.
여섯 째, 인식은 초기불전에서 실체 없는 신기루(S22:95)에 비유되어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아니 진아니 대아니 영혼이니 일심이니 하는 잘못된 인식이나 고정관념을 버리고, 이런 인식은 참으로 ‘텅 비고 공허하고 실체가 없는 것’(S22:95)을 분명하게 알아 마침내는 인식이 무상이요, 고통이요, 무아임을 통찰하여 염오-이욕-해탈을 완성해야 할 것이다.
2.1.4. 행온(行蘊, saṅkhara)
오온의 네 번째 항목은 행(行)이다.
‘수(受)’ ‘상(想)’을 제외한 모든 심리적 활동을 총칭하여 행온이라 한다. 이 행온이 업(業)을 형성하는 것이다. 한국불자들은 여태까지 오온의 행온도 의도적 행위 혹은 의도 그리고 업 형성(력) 등으로 이해하고 있는 경향이 많은데, 이것은 행온의 한 부분인 의도(cetana) 만을 부각시킨 역어일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주석서와 복서에 의하면 행온에는 이 의도를 포함한 50가지 심리현상들(느낌과 인식을 제외한 모든 심리현상, 혹은 심소법)들을 다 포함한다고 말하고 있다.
2.1.5. 식온(識薀, viññāna, 알음알이)
오온의 다섯 번째 항목은 식온(識薀)이다.
여러 초기불전에서 ‘식별(識別, 了別)한다고 해서 알음알이라 한다’고 식온을 정의하고 있다. viññāna는 vi(분리해서)+√jna(알다)에서 파생된 명사인데 영어로는 conciou sness 로 정착되었다.
‘식(識)’은 ‘요별(了別)해 낸다’라는 의미이다. ‘요(了)’는 ‘알아낸다’는 뜻이고 ‘별(別)’은 ‘분별’을 뜻한다. 그러므로 ‘식(識)’은 대상에 대해서 ‘분별하여 알아낸다’는 의미로서 지각, 인식(認識)의 활동과 그 결과이다. 또한 이것은 감성(感性)인식과 이성(理性)인식의 활동과 내용을 포함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