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0-21 15:28
릿차위 공화국
갠지스 강의 한쪽에 세니야 빔비사라 왕의 나라가 있다면 릿차위의 왓지 공화국은 강의 다른 한쪽에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릿차위 공화국을 대단히 칭찬하셨습니다. 릿차위 공화정을 높게 평가할 뿐만이 아니라 부처님께서는 릿차위의 발전과 진보를 위하여 사란다다 쩨띠야에서 지속적으로 설법을 하신 7가지 불퇴법을 설법하셨습니다. 비구 스님들에게 설법하시는 동안에 부처님께서는 심지어 비구 스님들에게 말씀하시길 만일 그들이 천상의 도솔천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면 얼룩덜룩한 무늬의 옷을 입는 릿차위 사람들을 보라고 충고하셨습니다. 릿차위 통일은 상호이해, 규율 그리고 강한 도덕에 기초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당연한 헌신, 존경 그리고 영예를 가지고 부처님께서 사란다다 쩨띠야에서 지속적으로 설법을 해 오신 7불퇴법을 지켰습니다.
그런 것들이 그들의 명성과 국력을 키우는 주요 요인이었습니다.
불퇴법의 7가지 규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
매일의 일상생활과 그에 대한 반성을 위해 매일 모인다.
서로 뭉쳐서 모이고 뭉쳐서 흩어진다. 그리고 만장일치로 결정된 사항을 실행한다.
이해되지 않는 것을 이해하고, 이미 이해된 지식은 유지하고, 정당한 존경을 가지고 제정된 규칙과 규정은 엄격히 지킨다.
연로한 왓지 사람들을 존경하고, 영예를 주고 그들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옮긴다.
여자들에게 음탕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전통을 존중하고 지킨다.
미래의 아라한을 위한 적절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현재의 아라한과 그들의 종교적 관습과 사원을 돌본다.
그들이 위에 언급한 7가지 규칙을 유지하고 지키는 한 아무런 해는 없고 진보와 영광이 그들 몫이 될 것이라고 부처님께서는 단호히 주장하셨습니다. 부처님 시대에 릿차위 사람들은 헌신과 존경을 가지고 그 규칙을 지켰던 것으로 보입니다. 왓지 공화국에 의해 맛본 늘어나는 특권에 고무된 위데하 국과 빠와의 말라 국은 왓지 공화국의 주권 아래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법과 정의의 통치
왓지 공화국의 관리들과 정치인들은 법과 심판의 통치권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재판관 자신들이 법과 심판의 집행자였습니다. 재판하는 과정에서 정치인과 지방행정관들이 법정에 어떤 간섭이나 적절치 못한 압력을 가한 아무런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빨리 주석서는 왕에 의해 제정된 규칙에 따라 심판이 어떻게 한 단계 한 단계씩 진행되었나 하는 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만일 피의자가 살인범으로 잡히게되면 조사가 완전히 끝나기 전에는 어떤 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어떤 관리도 벌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절도죄로 잡힌 사람은 완전한 조사를 위해 법무장관에게 넘겨졌습니다. 만일에 피의 사실이 사실로 밝혀지지 않으면 그 사람은 풀려났습니다. 만일 죄목이 사실로 증명되면 피의자는 법정의 법집행관에게 넘겨졌습니다. 그들 역시 독자적으로 조사를 하며 만일 무죄로 드러나면 피고는 풀려났습니다. 피고가 만일 유죄로 밝혀지면 내부 법 전문가에게 넘겨지고 그 다음 8인 사법위원회에 넘겨졌습니다. 그들 역시 자체 조사를 합니다. 그렇게 하여 피고는 조사를 받기 위하여 사령관에게 넘겨졌습니다. 만일 유죄로 드러나면 그는 피의 당사자를 왕 부관에게 보내고 그 다음 왕에게 보냈습니다. 그러면 그는 다시 피의자의 혐의를 조사하였습니다. 조사결과가 정당하고 사실이라면 ‘빠웨니뽓타깡(전통서적)’ 이라는 법전에 의거해 적절한 벌이 주어집니다. 빠웨니뽓타깡에는 각종 범죄의 유죄판결을 받은 기소자들을 벌주는 절차가 나와 있습니다.
릿차위 사람들의 강인한 생활, 사회봉사 그리고 의무
비록 보기에는 놀기 좋아하고 쉽게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보였지만, 릿차위 사람들은 그야말로 대단히 부지런하고 책임감이 있는 국민이었습니다. 빨리 경전은 그들이 나무 베개를 베고 살며 결코 교만하지 않은 사람들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깔링가 경에 따르면, 그들은 국가 발전에 매우 힘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 경에서, 릿차위 사람들이 사치에 빠져서 안락한 침대에서 자고 연예를 즐긴 결과 끝내는 적에게 승리를 안겨주고 말았다고 설명하셨습니다.
릿차위 왕자들이 학창시절에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를 보여주는 짧은 이야기가 이 경의 주석서에서 발견됩니다. 학생 신분의 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스승들에게 봉사한 후 등교하여 이미 배운 것을 실행에 옮기곤 했습니다. 그런 다음 세수를 한 후 껄끄러운 죽 한 그릇을 먹으러 가곤 했습니다. 아침 식사 후에 그들은 다시 학교로 가서 학업을 계속했습니다. 점심 후에 잠깐 눈을 붙였지만 잠들지 않도록 목침을 사용했습니다. 잠시 후에 그들은 학교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저녁을 마친 다음에도 그들은 학업에 몇 시간을 쏟았으며 목침을 베고 잠들었습니다. 릿차위 왕자들은 배우고자 하는 날카로운 열의와 유연한 천성 때문에 궁술에 능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화살 하나로 말꼬리의 가느다란 털 하나를 맞출 수 있었습니다.
위에 언급된 7가지 규칙의 두 번째에 따라 일단 모임을 소집하러 다니는 소리를 들으면 릿차위 사람들은 누구든지 많이 아프거나 그 이외의 어떤 상황일지라도 집에 머무를 수가 없었습니다.
만일 공화국의 어디에선가 반란이 일어나면 릿차위 왕자들은 나아가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서로 경쟁을 벌이곤 했습니다. 만일 어떤 왕자가 게으르다는 것이 밝혀지면 왕은 사신을 보내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곤 했습니다. 릿차위 사람들은 상호 협력하고 국가적인 사업에 도움을 주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릿차위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매일매일 융성하고 강대해졌는지를 설명하는 중요한 이유는 국민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뿌리 깊은 상호협력이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왕이 방문해 오면 언제나 따뜻한 마음으로 맞이하곤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상호 협력하면서 역경의 번성 속에서 발전했습니다.
왓지 혹은 릿차위 사람들은 언제나 병을 앓고 있는 친구를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상호 협력과 국가 건설이라는 점에서 와병의 슬픔이나 기쁨을 같이 나누기 위해 늘 모이곤 했습니다.
세 번째 규칙에 따라 곤궁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세금도 부과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역사와 전쟁담을 노인들로부터 듣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노인들로부터 들은 교훈을 되돌아보는 정신을 가지면서 네 번째 규칙을 지켰습니다.
다섯 번째 규칙에 따라 릿차위 사람들은 도시에 사는 어떤 소녀와 여인들에게도 비도덕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비도덕적인 생활을 한 한 주부가 공화정 위원회에 넘겨져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율장의 빠찟띠야(파일제, 참회해야 하는 죄)에는 이 사건에 대해 명백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릿차위 사람들의 특성
릿차위 사람들 중에는 부처님에 대하여 매우 헌신적인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전혀 존경하지 않는 사람들도 그 만큼 많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릿차위 사람들은 부처님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머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습니다.
한번은 모든 릿차위 왕자들이 활과 화살을 준비하여 개를 이끌고 웨살리의 가까운 숲으로 사냥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나무 아래서 명상을 하고 계신 것을 보고는 무기를 내려놓고 손을 모으고 부처님께 다가 왔습니다. 이 이야기는 릿차위꾸마라까 경에 나와 있습니다. 마하나마 릿차위에 의하면 이 릿차위 왕자들은 매우 거친 성질을 갖고 있었습니다.
자따까 이야기의 주석서 중의 하나는 사소한 일에도 분노하곤 하는 매우 화를 잘 내는 한 릿차위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때 그를 부처님에게 데리고 가서 설법을 듣게 한 후에 그는 영원히 온순해졌습니다.
부처님을 칭찬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한 릿차위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가 부처님을 칭찬하는 소리를 들으면 기뻐서 칭찬한 사람들에게 옷을 주곤 했습니다. 젊은 릿차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들은 한 비구 스님으로 하여금 비구니 스님과 관계를 맺도록 강요했습니다. 또 한번은 한 스님으로 하여금 매춘부와 잠자리를 함께 하도록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텍스트에 따르면 몇 명의 릿차위 사람들이 한 스님과 비구니 스님을 꾀어서 관계를 갖도록 했습니다. 그는 좀 우둔했습니다.
부처님의 열렬한 귀의자로 왓다라는 릿차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좀 우둔한 사람이었는데 멧떼이야 붐맛자까라는 스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스님은 이단 그룹에 속한 스님이었습니다. 한번은 그 스님에게 사주를 받은 그 남자는 부처님 앞에서 답바말라뿟따 아라한에 대한 불평을 감히 늘어놓았습니다.
이름이 둠무카라는 릿차위 사람이 한번은 부처님과의 논쟁에서 패하여 조용히 앉아 있는 삿짜까 니간타를 비꼬고 부처님을 칭송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수낙캇따라는 릿차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만큼의 수행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옷을 벗고 부처님을 조롱하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작성일 : 13-10-21 15:28
릿차위 공화국
갠지스 강의 한쪽에 세니야 빔비사라 왕의 나라가 있다면 릿차위의 왓지 공화국은 강의 다른 한쪽에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릿차위 공화국을 대단히 칭찬하셨습니다. 릿차위 공화정을 높게 평가할 뿐만이 아니라 부처님께서는 릿차위의 발전과 진보를 위하여 사란다다 쩨띠야에서 지속적으로 설법을 하신 7가지 불퇴법을 설법하셨습니다. 비구 스님들에게 설법하시는 동안에 부처님께서는 심지어 비구 스님들에게 말씀하시길 만일 그들이 천상의 도솔천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면 얼룩덜룩한 무늬의 옷을 입는 릿차위 사람들을 보라고 충고하셨습니다. 릿차위 통일은 상호이해, 규율 그리고 강한 도덕에 기초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당연한 헌신, 존경 그리고 영예를 가지고 부처님께서 사란다다 쩨띠야에서 지속적으로 설법을 해 오신 7불퇴법을 지켰습니다.
그런 것들이 그들의 명성과 국력을 키우는 주요 요인이었습니다.
불퇴법의 7가지 규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
매일의 일상생활과 그에 대한 반성을 위해 매일 모인다.
서로 뭉쳐서 모이고 뭉쳐서 흩어진다. 그리고 만장일치로 결정된 사항을 실행한다.
이해되지 않는 것을 이해하고, 이미 이해된 지식은 유지하고, 정당한 존경을 가지고 제정된 규칙과 규정은 엄격히 지킨다.
연로한 왓지 사람들을 존경하고, 영예를 주고 그들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옮긴다.
여자들에게 음탕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전통을 존중하고 지킨다.
미래의 아라한을 위한 적절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현재의 아라한과 그들의 종교적 관습과 사원을 돌본다.
그들이 위에 언급한 7가지 규칙을 유지하고 지키는 한 아무런 해는 없고 진보와 영광이 그들 몫이 될 것이라고 부처님께서는 단호히 주장하셨습니다. 부처님 시대에 릿차위 사람들은 헌신과 존경을 가지고 그 규칙을 지켰던 것으로 보입니다. 왓지 공화국에 의해 맛본 늘어나는 특권에 고무된 위데하 국과 빠와의 말라 국은 왓지 공화국의 주권 아래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법과 정의의 통치
왓지 공화국의 관리들과 정치인들은 법과 심판의 통치권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재판관 자신들이 법과 심판의 집행자였습니다. 재판하는 과정에서 정치인과 지방행정관들이 법정에 어떤 간섭이나 적절치 못한 압력을 가한 아무런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빨리 주석서는 왕에 의해 제정된 규칙에 따라 심판이 어떻게 한 단계 한 단계씩 진행되었나 하는 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만일 피의자가 살인범으로 잡히게되면 조사가 완전히 끝나기 전에는 어떤 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어떤 관리도 벌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절도죄로 잡힌 사람은 완전한 조사를 위해 법무장관에게 넘겨졌습니다. 만일에 피의 사실이 사실로 밝혀지지 않으면 그 사람은 풀려났습니다. 만일 죄목이 사실로 증명되면 피의자는 법정의 법집행관에게 넘겨졌습니다. 그들 역시 독자적으로 조사를 하며 만일 무죄로 드러나면 피고는 풀려났습니다. 피고가 만일 유죄로 밝혀지면 내부 법 전문가에게 넘겨지고 그 다음 8인 사법위원회에 넘겨졌습니다. 그들 역시 자체 조사를 합니다. 그렇게 하여 피고는 조사를 받기 위하여 사령관에게 넘겨졌습니다. 만일 유죄로 드러나면 그는 피의 당사자를 왕 부관에게 보내고 그 다음 왕에게 보냈습니다. 그러면 그는 다시 피의자의 혐의를 조사하였습니다. 조사결과가 정당하고 사실이라면 ‘빠웨니뽓타깡(전통서적)’ 이라는 법전에 의거해 적절한 벌이 주어집니다. 빠웨니뽓타깡에는 각종 범죄의 유죄판결을 받은 기소자들을 벌주는 절차가 나와 있습니다.
릿차위 사람들의 강인한 생활, 사회봉사 그리고 의무
비록 보기에는 놀기 좋아하고 쉽게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보였지만, 릿차위 사람들은 그야말로 대단히 부지런하고 책임감이 있는 국민이었습니다. 빨리 경전은 그들이 나무 베개를 베고 살며 결코 교만하지 않은 사람들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깔링가 경에 따르면, 그들은 국가 발전에 매우 힘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 경에서, 릿차위 사람들이 사치에 빠져서 안락한 침대에서 자고 연예를 즐긴 결과 끝내는 적에게 승리를 안겨주고 말았다고 설명하셨습니다.
릿차위 왕자들이 학창시절에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를 보여주는 짧은 이야기가 이 경의 주석서에서 발견됩니다. 학생 신분의 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스승들에게 봉사한 후 등교하여 이미 배운 것을 실행에 옮기곤 했습니다. 그런 다음 세수를 한 후 껄끄러운 죽 한 그릇을 먹으러 가곤 했습니다. 아침 식사 후에 그들은 다시 학교로 가서 학업을 계속했습니다. 점심 후에 잠깐 눈을 붙였지만 잠들지 않도록 목침을 사용했습니다. 잠시 후에 그들은 학교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저녁을 마친 다음에도 그들은 학업에 몇 시간을 쏟았으며 목침을 베고 잠들었습니다. 릿차위 왕자들은 배우고자 하는 날카로운 열의와 유연한 천성 때문에 궁술에 능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화살 하나로 말꼬리의 가느다란 털 하나를 맞출 수 있었습니다.
위에 언급된 7가지 규칙의 두 번째에 따라 일단 모임을 소집하러 다니는 소리를 들으면 릿차위 사람들은 누구든지 많이 아프거나 그 이외의 어떤 상황일지라도 집에 머무를 수가 없었습니다.
만일 공화국의 어디에선가 반란이 일어나면 릿차위 왕자들은 나아가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서로 경쟁을 벌이곤 했습니다. 만일 어떤 왕자가 게으르다는 것이 밝혀지면 왕은 사신을 보내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곤 했습니다. 릿차위 사람들은 상호 협력하고 국가적인 사업에 도움을 주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릿차위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매일매일 융성하고 강대해졌는지를 설명하는 중요한 이유는 국민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뿌리 깊은 상호협력이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왕이 방문해 오면 언제나 따뜻한 마음으로 맞이하곤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상호 협력하면서 역경의 번성 속에서 발전했습니다.
왓지 혹은 릿차위 사람들은 언제나 병을 앓고 있는 친구를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상호 협력과 국가 건설이라는 점에서 와병의 슬픔이나 기쁨을 같이 나누기 위해 늘 모이곤 했습니다.
세 번째 규칙에 따라 곤궁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세금도 부과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역사와 전쟁담을 노인들로부터 듣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노인들로부터 들은 교훈을 되돌아보는 정신을 가지면서 네 번째 규칙을 지켰습니다.
다섯 번째 규칙에 따라 릿차위 사람들은 도시에 사는 어떤 소녀와 여인들에게도 비도덕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비도덕적인 생활을 한 한 주부가 공화정 위원회에 넘겨져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율장의 빠찟띠야(파일제, 참회해야 하는 죄)에는 이 사건에 대해 명백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릿차위 사람들의 특성
릿차위 사람들 중에는 부처님에 대하여 매우 헌신적인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전혀 존경하지 않는 사람들도 그 만큼 많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릿차위 사람들은 부처님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머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습니다.
한번은 모든 릿차위 왕자들이 활과 화살을 준비하여 개를 이끌고 웨살리의 가까운 숲으로 사냥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나무 아래서 명상을 하고 계신 것을 보고는 무기를 내려놓고 손을 모으고 부처님께 다가 왔습니다. 이 이야기는 릿차위꾸마라까 경에 나와 있습니다. 마하나마 릿차위에 의하면 이 릿차위 왕자들은 매우 거친 성질을 갖고 있었습니다.
자따까 이야기의 주석서 중의 하나는 사소한 일에도 분노하곤 하는 매우 화를 잘 내는 한 릿차위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때 그를 부처님에게 데리고 가서 설법을 듣게 한 후에 그는 영원히 온순해졌습니다.
부처님을 칭찬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한 릿차위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가 부처님을 칭찬하는 소리를 들으면 기뻐서 칭찬한 사람들에게 옷을 주곤 했습니다. 젊은 릿차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들은 한 비구 스님으로 하여금 비구니 스님과 관계를 맺도록 강요했습니다. 또 한번은 한 스님으로 하여금 매춘부와 잠자리를 함께 하도록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텍스트에 따르면 몇 명의 릿차위 사람들이 한 스님과 비구니 스님을 꾀어서 관계를 갖도록 했습니다. 그는 좀 우둔했습니다.
부처님의 열렬한 귀의자로 왓다라는 릿차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좀 우둔한 사람이었는데 멧떼이야 붐맛자까라는 스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스님은 이단 그룹에 속한 스님이었습니다. 한번은 그 스님에게 사주를 받은 그 남자는 부처님 앞에서 답바말라뿟따 아라한에 대한 불평을 감히 늘어놓았습니다.
이름이 둠무카라는 릿차위 사람이 한번은 부처님과의 논쟁에서 패하여 조용히 앉아 있는 삿짜까 니간타를 비꼬고 부처님을 칭송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수낙캇따라는 릿차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만큼의 수행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옷을 벗고 부처님을 조롱하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