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


계율(戒律)은 열반의 주춧돌(5) /빤냐완따 스님

관리자
2021-04-24
조회수 1107

Co-AdminMahānāma

Mahānāma Pariyatti, patipatti, pativedha

Apr 21, 2021, 11:1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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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테라와다불교 [빤냐완따] 이사장 스님의 목요법문




[계율(戒律)은 열반의 주춧돌]



5. 선(善)과 악(惡)의 갈림길에서


빨리어 경전 『굿따까 니까야』의 <담마빠다>(진리의 말씀)에 다음과 같은 게송(1번과 2번송)이 나옵니다.


Manopubbaṅgamā dhammā manaseṭṭhā manomayā

마노-뿝방가마 담마- 마노-셋타- 마노-마야-;

manasā ce paduṭṭena bhāsati vā karoti vā

마나사- 째- 빠둣테-나 바사-띠와-까로-띠와-,

tato naṁ dukkhamanveti cakkaṁ va vahato padaṁ

따또- 낭 두카만 웨-띠 짜깡와 와하또- 빠당.

마음이 모든 것에 앞서 가고

마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마음에 의해 모든 행위는 지어진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쁜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한다면 그에게는

반드시 고통이 뒤따른다. 마치

수레가 황소를 뒤따르듯이.

Manopubbaṅgamā dhammā manaseṭṭhā manomayā

마노-뿝방가마 담마- 마노-셋타- 마노-마야-;

manasā ce pasannena bhāsati vā karoti vā,

마나사- 째- 빠산네-나 바사-띠와-까로-띠와,

tato naṁ sukkhamanveti chāyā va anapāyinī

따또- 낭 수카망 웨-띠 차-야-와 아나빠-이니-.

마음이 모든 것에 앞서 가고

마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마음에 의해 모든 행위는 지어진다.

만일 어떤 사람이 착한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한다면 그에게는

반드시 행복이 뒤따른다. 마치

그림자가 물체를 떠나지 않듯이.


불교를 이해할 때 매우 중요하게 언급되는 용어 중의 하나가 업(業)이라는 단어입니다. 빨리어로 ‘깜마'(Kamma)라고 하지요. ‘업’은 여러 가지 마음작용 가운데 하나입니다. 흔히 ‘업(業)은 의도(行)다‘ 라고 합니다. 그래서 업을 행업(行業)이라고도 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의도가 순전히 업이다’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의도’는 생겼다 사라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의도는 이미 사라졌고, 미래의 의도는 아직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업’은 마치 생물과 같아서 과거의 업이 현재에 영향을 주고, 현재의 업이 가까운 미래 혹은 먼 미래에까지 영향을 끼칩니다. 중요한 것은 업이라고 하는 작용이 마음의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의도'에는 ’선한 의도‘와 ’불선한 의도‘가 있습니다. 물론 선하지도 않고 불선하지도 않은 중립적인 의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삶의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의도는 ’선한 의도‘와 ’불선한 의도‘ 둘 중의 하나입니다. 『앙굿따라 니까야』<법답지 못한 행위 경>(AN10:209)을 보면, 한때 어떤 바라문이 고따마 부처님을 찾아뵙고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어떤 중생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나기도 하고, 또 어떤 중생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善處), 천상세계에 태어납니다. 그것은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입니까?” 이에 고따마 부처님께서는 “그것은 법답지 못한 행위와 삐뚤어진 행위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그것은 법다운 행위와 곧은 행위 때문이니라.” 그리고 다음과 같이 설하셨습니다.


바라문이여,

몸으로 짓는 3가지

법답지 못한 행위와 삐뚤어진 행위가 있고,

입으로 짓는 3가지

법답지 못한 행위와 삐뚤어진 행위가 있고,

마음으로 짓는 3가지

법답지 못한 행위와 삐뚤어진 행위가 있느니라.


바라문이여,

그러면 무엇이 몸으로 짓는 3가지

법답지 못한 행위와 삐뚤어진 행위인가?

여기 어떤 자는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고

삿된 음행을 하느니라.


바라문이여,

그러면 무엇이 입으로 짓는 3가지

법답지 못한 행위와 삐뚤어진 행위인가?

여기 어떤 자는 거짓말을 하고

이간질을 하고, 험한 말을 허고

쓸데없는 말을 하느니라.


바라문이여,

그러면 무엇이 마음으로 짓는 3가지

법답지 못한 행위와 삐뚤어진 행위인가?

여기 어떤 자는 탐욕으로 가득 차 있고

성냄으로 가득 차 있고

그릇된 견해를 가졌느니라.


선한 의도를 ‘선업’(善業) 즉 ‘꾸살라’(Kusala)라 하고, 불선한 의도를 ‘아꾸살라’(Akusala)라고 합니다. 업(業)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유는, 업이 단지 일시적으로 생겼다가 소멸되는 일회성이 아니라 결과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좋은 의도로서의 ‘선업’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나쁜 의도로서의 ‘불선업’은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를 일러 ‘업의 법칙’ 이라고 하며, 이 ‘업의 법칙’은 원인과 결과의 필연성 측면에서 볼 때 ‘인과의 법칙’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고따마 붓다께서 사왓티성의 제따와나 수도원에 머무실 적에 하루는 아나타삔디까 장자에게 인과(因果)의 법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게송을 들려주셨습니다. <담마빠다>119번송·120번송.


악의 열매가 익기 전에는

악한 자라도 복을 만난다.

그러나 악의 열매가 익었을 때

악한 자는 큰 고통을 받게 된다.


선의 열매가 익기 전에는

선한 이도 가끔 화를 만난다.

그러나 선의 열매가 익었을 때

선한 자는 크나큰 행복을 누린다.


모든 존재들은 전생의 업에 의해 태어나서 일평생 업을 지으며 살다가 업을 따라 임종을 맞습니다. 업은 3가지의 통로를 통해 표출됩니다. 그 3가지 통로를 일컬어 ‘신(身)·구(口)·의(意)’라고 합니다. 이처럼 업은 몸으로 짓고, 입으로 짓고, 생각으로 짓는다 하여 ‘3업’(三業)이라고 합니다. 각각의 업을 좀 더 세분화해 보면, 몸으로 짓는 업 3가지, 입으로 짓는 업 4가지, 마음으로 짓는 업 3가지가 있습니다. 이를 일러 ‘10선업’ 혹은 ‘10악업’이라고 하지요.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선업 10가지 》

‘10악업을 지양한 10가지 선행’



<몸으로 짓는 선업>(바른 행위, Sammā-kammanta)

1.불살생(방생) 2.훔치지 않음(보시·봉사) 3.불사음


<입으로 짓는 선업>(바른 언어, Sammā-vācā)

4.진실된 말(거짓말 안함) 5.화합하는 말(이간질 안함)

6.부드러운 말(악담 안함) 7.의미있는 말(잡담 안함)


<마음으로 짓는 선업>(바른 생각, Sammā-saṅkappa)

8.탐욕하지 않음(만족) 9.성내지 않음(자비)

10.어리석은 생각이나 그릇된 견해에 빠지지 않음(지혜)


《 불선업 10가지 》

‘10선업에 역행하는 10가지 악행’


1. 살생 - 살아있는 어류나 육류를 사육하거나 구매하여 직접 조리해 먹는 행위. 개미·지렁이·파리·모기 ·진딧물 등을 때려잡거나 밟아죽이거나 살충제를 사용해 죽이는 행위. 살인, 교살, 살인방조 등 일체의 살아 있는 생명을 해치는 행위.


2. 도둑질 - 남의 물건이나 돈을 직접 훔치거나 남이 경작해놓은 고추·오이·호박·야채 등을 몰래 취하는 행위. 습득한 지갑이나 스마트폰 등을 찾아주지 않는 행위. 이처럼 주지 않는 것을 주인의 동의 없이 취하는 일체의 행위가 불투도의 계율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3. 사음 - 출가자는 일체의 음행을 삼가 해야 하고, 재가자의 경우는 남의 가정을 깨뜨리는 행위는 물론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수 있는 일체의 물리적·언어적 성적행위를 삼가 해야 합니다.


4. 속이는 말 - 안 본 것을 보았다 말하고, 본 것을 안보았다 말하며, 사소한 일을 크게 부풀려 말하고, 중요한 일을 사소한 일인 듯 말하며, 상대방을 폄하하고, 자신을 과대포장 하는 말 등 진실되지 않게 말하는 것.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행위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5. 이간하는 말 - ‘양설(兩舌)’ 또는 ‘이간질’이라고도 하지요. ‘양설(兩舌)’은 여기서 하는 말과 저기서 하는 말이 같지 않다는 뜻입니다. 모든 사회는 서로의 관계성 속에서 화합과 질서를 유지해 나가는데, 화자의 말이 일관되지 않으면 듣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판단을 함으로서 사회혼란을 애기시킵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나 두 집단을 오가며 비방하는 ‘이간질’로 인해 양자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다가도 돌연 적대관계가 되곤 합니다. 이 비밀은 무덤 속에 들어갈 때까지 지키겠노라던 친구와의 그 철석같은 약속을 끝내 지키지 않고 발설함으로써 그 친구를 곤경에 빠뜨리는 행위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6. 사나운 말 - 악담, 욕설, 비방,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거친 언어,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가슴에 상처를 주는 비수와도 같은 일체의 언어 행위.


7. 쓸데없는 말 - 말 그대로 무의미한 말, 유익하지 못한 말, 대화의 본질에서 벗어난 불필요한 말, 잡담. 음담패설, 공리공논, 특히 수행의 측면에서 볼 때 신변잡기에 관련된 이야기들. 예를 들면, 너 오늘 점심 뭐 먹었니? 나는 ** 먹었는데. 그 식당 음식은 괜찮은데 김치가 별로더라. 엊그제 갔었는데 그 집 인테리어 확 바뀌었더라. 아 참 걔 요즘 잘 나간다며? 얼마 전에 신차까지 뽑았더라고...(위의 예는 얼마 전 터미널 대합실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다가 들은 이야기입니다.)


8. 탐욕 - 5감의 감각적 대상에 끊임없이 탐닉하는 것. 즉, 아름답고 화려하고 감미로운 시각·청각·미각·후각 등의 접촉 대상에 집착하는 행위(가령 건강한 사람이 보양식을 즐겨 먹는다거나 맛집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는 행위가 여기에 포함됩니다). 그리고 지나친 소유욕으로 인해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좀 더 크고 넓은 집, 좀 더 고급스러운 승용차나 명품만을 선호하는 행위.


9. 분노 - 성냄·원한·적개심·악의·폭력의지·짜증 울화·다툼·분쟁·전쟁 등을 통해 상대를 괴롭히고 짓밟고 파괴시기려는 심리.


10. 어리석음 - 인과를 이해하지 못하고, 인과를 믿지 않고, 선행과 악행을 구분할 줄 모르는 것. 일체가 연기법 속에서 생멸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나자신, 내것, 내집 내가족이라는 자기 위주의 사고관념에 집착돼 있는 것. 그리고 이렇게 살다 죽으면 그만이라는 단멸론적인 생각.


이와 같이 불교에서는 선악의 판단 기준을 10선업과 10악업에 두고 있습니다. 이 승은 종종 불자님들께 묻습니다. 사람들은 한 평생 살면서 악업을 많이 지을까요? 선업을 더 많이 지을 것 같습니까? 선업보다는 악업을 훨씬 많이 짓습니다. 위의 10가지 선악의 분류를 잘 읽고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일상 속에서 스스로를 하나하나 체크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일생동안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악업을 지으며 살아왔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감각적 욕망의 대상을 좆아 다니며 이리저리 방황합니다. 그 방황의 뒤안길에서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한 채 10악업의 늪으로 점점 빠져듭니다. 그 늪은 4악처(惡處)로 연결된 통로입니다. 4악처로 향하는 통로는 10선업의 실천을 통해 차단할 수 있습니다. 10선업의 실천으로 악행을 멈추게 할 수 있고, 10선행으로 말미암아 선처(善處)에 나게 됩니다. 10선행은 올바른 언행·올바른 마음가짐입니다. 올바른 언행과 올바른 마음가짐은 <8정도>수행의 필수요건입니다. 고로 10선행의 실천은 열반의 초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빨리어 율장 <마하왁가>의 기록에 의하면, 고따마 붓다께서는 바라나시 사슴동산에서 <팔정도>와 <사성제> 그리고 <무아>에 대한 법문을 통해 다섯 제자들로 하여금 완전한 깨달음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런 얼마 후 좋은 가문의 대부호 아들인 ‘야사’라는 젊은이가 고따마 붓다를 친견하기 위해 사슴동산을 찾아옵니다. 당시 야사는 환락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5욕락에 빠져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환멸을 느끼고는 입버릇처럼 ‘아, 재앙이로다. 아, 재난이로다.’ 탄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고따마 붓다께서는 야사에게,


여기에는 재앙이 없노라.

여기에는 재난도 없노라.

이리 와서 앉거라. 그대 위해

차례차례로 법을 설해 주겠노라.

보시(Dāna)를 실천하고, 계(Sīla)를 준수하면

보시·지계의 공덕으로 하늘에 나게 된다.

여러 애욕에는 환난과 허무함과

온갖 번뇌가 따르기 마련이다.

애욕에서 벗어나면 큰 공덕이 드러나느니라.


혹자는 불교를 일컬어 ‘깨달음의 종교’ ‘자비의 종교’라고 합니다. 그러나 불교는 깨달음이나 자비만으로는 온전히 설명될 수 없는 중층구조를 지닌 종교입니다. 불교는 <팔정도>의 3학(三學)에서 볼 수 있듯이 <정·혜>와 더불어 <계행>을 중요시하는 매우 ‘도덕적인 종교’입니다. 특히 불교는 윤리적 측면에서 인간의 모든 행위를 선업(善業)과 불선업(不善業)으로 규정짓고 있습니다. 이 두 종류의 업은 인과(因果)의 법칙 속에서 3세(과거 미래 현재)를 관통하며 다양한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 업이 선한 영향력으로 나타날 때가 있고, 또 어떤 때는 불선한 영향력으로 나타납니다.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라 하였습니다. 즉 원인이 좋으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따라오고, 원인이 나쁘면 반드시 나쁜 과보를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태어나면 죽게 되어 있고, 주면 반드시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업보의 원칙입니다. 누구도 인과의 법칙으로부터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불교는 인과의 법칙에 대한 믿음을 통해 불선한 영향력을 지양하고 선한 영향력으로써 밝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합니다. 부디 악업 짓지 말고 10선업의 공덕을 쌓으면서 해탈의 바른 길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두 줄기의 강물이 흘러갑니다.


선업(善業)의 강

불선업(不善業)의 강


강물과 강물 사이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어디선가 먹구름이 몰려옵니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집니다.


일순간 우리들의 마음은

그 거센 강물에 떠내려갑니다.


당신은 지금


선업의 강, 불선업의 강

어느 강물 위를 떠내려가고 있습니까?


불멸 2565(2021). 4.22

                            천림산 기슭에서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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