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


깨달음이란 무엇인가?(4) /빤냐완따 스님

관리자
2021-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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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교에서는 생각이나 분석 ‧ 사유 ‧ 알음알이를 철저히 경계한다. 대표적인 용어 ‘직지(直指)’란 분석 ‧ 사유 ‧ 알음알이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한생각 일기 이전의 실상(궁극적 실재)을 여실히 들여다 봄’을 의미한다. 그러다보니 sammadiṭṭhi의 한자어 번역 정견(正見)이나 정견해(正見解)를 통찰지에 의한 법의 눈(法眼)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나 분석 ‧ 사유 ‧ 알음알이를 통한 見이나 見解, 所見 등으로 오해하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수행자가 교리체계에 대한 학습과정에서 도달해야 할 목적지를 한번 올려다본다는 측면에서는 합당한 이해라 할 수 있지만, sammadiṭṭhi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결코 될 수 없다. 


한편, 수행자들 사이에는 또 다른 오해도 있다. 즉 삼마와야마(samma-vayama,바른 정진), 삼마사띠(samma-sati,바른 알아차림), 삼마사마-디(samma-samādhi,바른 삼매) 3가지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통찰지의 성숙과 함께 생겨난 현상에 대한 바른 이해가 곧 正見이라고 sammadiṭṭhi를 한정시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수행의 결실, 통찰지 성숙에 의해 획득된 正見은 완료형이 아닌 완료진행형으로서, 항상 실천의 기능을 수반한다. 


청정도론(visuddhi magga,淸淨道論)에서 언급하고 있는 7단계의 청정(淸淨) 중에 3번째에 해당하는 ‘견해의 청정(ditthi visuddhi)’을 예로 들면, 걷는 수행을 하는 도중에 어느 순간 ‘걸음이라는 것은 움직임이라는 물질과 그 움직임을 인식하는 정신만이 존재할 뿐 나라고 하는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로 인해 ‘내가 걷고 있다’라고 하는 사견이 떨어져나가고 발의 움직임과 그 움직임을 인식하고 있는 마음만이 지속적으로 관찰되어지는 것을 견해의 청정, 봄(view)의 청정이라 한다. 즉, 체험으로 이해한 것 +이해의 실천이 지금 이 순간 몸과 마음 안에서 구현되고 있는 것을 sammadiṭṭhi라 한다. 


7. 삼마딧티(sammadiṭṭhi,正見)의 구분


테라와다불교에서는 sammadiṭṭhi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수행자가 금생에 갈망과 분노와 무지로부터 벗어난 성스러운 영역에 이르기 위해서는 다음의 5가지 정견을 단계적으로 확립해나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1.깜맛사까따 삼마딧티(kammassakata sammadiṭṭhi) : 업의 법칙을 믿고 바르게 이해하는 지혜. 모든 존재는 스스로 업을 만들고 업을 상속시키며, 선업이든 불선업이든 그 결과는 스스로 받게 된다고 분명히 믿고 이해하는 지혜. 이 삼마딧티는 아견(我見,atta diṭṭhi)이 여전히 남아있는 세간의 정견이다. 자아나 영혼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atta diṭṭhi라 하고, 자아 ‧ 영혼 ‧ 개성 ‧ 인격 등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을 sakaya diṭṭhi라 한다.

특히 atta diṭṭhi를 4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① ati orarika attadiṭṭhi : 자아에 대한 매우 견고한 믿음

② orarika attadiṭṭhi : 자아에 대한 견고한 믿음

③ sukhuma attadiṭṭhi : 자아에 대한 희박한 믿음

④ ati sukhuma attadiṭṭhi : 자아에 대한 매우 희박한 믿음


이와같이 4단계로 분류되는 atta(我)에 대한 잘못된 견해는 아래에서 설명될 nāma rūpa pariggaha sammadiṭṭhi, hetu paccaya sammadiṭṭhi, vipassana ñāna sammadiṭṭhi, lokuttara magga phala sammadiṭṭhi 등 4가지 sammadiṭṭhi의 순차적인 확립에 의해 제거될 수 있다.


 2.나-마 루-빠 빠릭가하 삼마딧티(nāma-rūpa-pariggaha-sammadiṭṭhi) : 존재의 물질적 정신적 특성에 대한 온전한 이해로부터 일어나는 정견(正見)이다. 나(존재)를 정신과 물질로 분명하게 구분해서 보는 지혜에 의해 ati-orarika-attadiṭṭhi가 제거되면서 diṭṭhi-visuddhi로 일컬어지는 견해의 청정이 일어난다.


3.헤뚜 빳짜야 빠릿가하 삼마딧티(hetu paccaya pariggaha sammadiṭṭhi) : 물질적 정신적 현상의 원인과 조건에 대한 분명한 이해로부터 일어나는 정견(正見)이다. 원인과 조건을 바르고 분명하게 이해하는 지혜에 의해 orarika attadiṭṭhi가 제거된다. 즉, 원인 ‧ 조건과 관계없는 결과가 있을 수 있을 수 있다고 보는 ahetuka diṭṭhi와 창조자나 그 어떤 전지자가 행위의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잘못된 원인 ‧ 조건에 대한 믿음인 visama hetu diṭṭhi가 제거되면서 담마(法)에 대한 거친 의심이 사라진다. 


 4. 위빳사나 냐-나 삼마딧티(vipassana ñāna sammadiṭṭhi) : 현상이 지각될 때 3법인(무상, 고, 무아)을 체험하면서 바른 이해와 함께 정견이 일어난다. 이 정견에 의해 sukhuma attadiṭṭhi, 즉 자아에 대한 희박한 믿음과 담마에 대한 회의적 의심이 제거된다. 그러나 수행중에 사라지는 현상보다 일어나는 현상이 두드러질 때 자아의식이 더욱 강해지고 모든 현상 속에는 ‘영원성’이 있다는 사견(wrong view)이 깊어지기도 한다. 한편 일어나는 현상보다 사라지는 현상이 두드러질 때, 문득 모든 현상은 더럽고 불쾌하고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야, 모든 것은 허무한 거야, 하는 그릇된 관념이 생겨나 수행을 포기하거나 스스로를 학대하기도 한다. 


 5.로꿋따라 막가 팔라 삼마딧티(lokuttara magga phala sammadiṭṭhi) : 성스러운 출세간의 도와 과를 성취하면서 일어나는 정견이다. 원인 ‧ 조건 ‧ 결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이 정견에 의해 ati sukhuma attadiṭṭhi, 즉 자아에 대한 매우 희박한 사견마저 제거된다. 이 로꿋따라 막가 빨라 삼마딧티는 


sotapatti magga phala sammadiṭṭhi (소따빳띠 도와 과에 의해 확립되는 정견), sakadagami magga phala sammadiṭṭhi(사까다가미 도와 과에 의해 확립되는 정견), anagami magga phala sammadiṭṭhi(아나가미 도와 과에 의해 확립되는 정견), arahatta magga phala sammadiṭṭhi(아라핫따 도와 과에 의해 확립되는 정견) 등 4단계로 구분되는데, 이 4가지 정견을 순차적으로 확립한 수행자는 언제 어디서나 모든 현상을 4가지 성스러운 진리인 사성제로써 꿰뚫어 볼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테라와다불교에서는 sammadiṭṭhi를 자아(atta,我)의식의 소멸 정도에 따라 단계적으로 다양하게 구분하고 있다. 지혜는 정견을 수반하고 정견은 지혜를 동반하지만 사실 정견과 지혜는 두 얼굴로 이해되고 있는 한 몸이다. 불교는 결국 자아가 있다는 그릇된 견해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요, 사성제를 완전하게 꿰뚫음으로 말미암아 사견의 완전한 소멸, 생사윤회의 고리가 ‘툭’ 끊어져버린 닙바-나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일상의 삶 속에서 사성제의 통찰과 함께 나고 꺼짐이 없는 대자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테라와다불교권에서는 스승이 제자들에게 수행지도를 허락하거나 파견을 내보낼 때 그 제자가 정견을 갖추고 있는지, 담마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지 점검한다. 수행문답을 통해서, 혹은 제자의 일상행위를 보고 파악한다. 높은 수준의 정견을 갖추고 있지 못한 수행자는, 밖으로 드러난 번뇌와 마음속의 거친 번뇌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을지언정 미세한 번뇌, 잠재성을 지닌 번뇌는 결코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로인해 앗따(atta)라고 하는 자아의식이 신구의(身口意)를 통해 드러난다. 사견의 증좌는 어떠한 형태로든 반드시 나타난다. 탐진치는 ‘atta의식’이라고 하는 사견과 함께 일어난다. 수행자가 정견으로써 바르게 보고 있다면 아만 ‧ 위축 ‧ 위선 등 자아의식에 뿌리내린 사견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자아라는 번뇌가 소멸됐을 때라야 만이 붓다의 가르침을 상대방에게 전하여 그들로 하여금 탐진치라는 번뇌를 뿌리 뽑고 괴로움의 종지부를 찍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딧티(diṭṭhi,사견)는 항상 번뇌와 함께 하며 그것은 결코 완료형이 아니다. 딧티와 함께 ‘나’는 계속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글을 쓰고, 내가 말을 하고, 내가 침묵하고, 내가 밥을 먹고, 내가 걸어다니면서, 잘난 나를 드러내려 하거나 부족한 나를 감추고 싶어 한다. 또한 저항하기도 하고 타협하기도 한다. 가끔은 자비라는 이름으로 미묘하게 포장된 채 '나' 가 드러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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