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지혜 ‧ 정견 ‧ 깨달음’ 과 관련된 빨리어 용어들
보통 ‘통찰지’로 번역되고 있는 빨리어 ‘빤냐-(paññā)’는 산스크리트어로 ‘prajñā’라 한다. 이것을 중국은 ‘반야(般若)’로 음역했고, 한국은 ‘지혜’ 혹은 ‘반야지혜’로 옮겼다. 결국 ‘반야’는 한국에서 대승불교 지혜의 대명사가 되었다. 빨리어 경전상에는 지혜(智慧)의 의미를 담고 있는 술어들이 다양하게 나온다.
냐-나(ñāna,智), 빤냐-(paññā,通察智), 윗짜-(vijjā,明智),
아-로까(āloka,光明智), 아빈냐-(abhhiññā,超越智),
빠린냐-(pariññā,通達智), 안냐-(aññā,究竟智)
등에서 알 수 있듯이 통찰이나 증득(혹은 깨달음)의 수준에 따라 비교적 체계적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 외,
짝꾸까라니(cakkukaraṇi) : 진리의 눈, 法眼
빠리자-나띠(parijānati) ; 정확하게 알다. 이해하다. 遍知
삿치까따(sacchikata) : 경험된, 증험된, 눈에 보여진
삿치까라나(sacchikaraṇa) : 실감, 경험, 증험, 깨달음
삿치끼리야-아비사마야(sacchikiriyā-abhisamaya) ; 경험에 의한 완전한 이해
아비자-나(abhijāna) ; 경험으로 앎, 철저히 앎, 깨달아 앎,
삼마냐-나(sammañāna) : 올바른 앎, 깨달음, 正智
삼마빤냐-(sammappaññā) : 참된 지혜, 正慧
삼마단냐-(sammadaññā) : 완전한 지혜, 完全智
아비사마야(abhisamaya) : 통찰, 분명한 이해, 現觀
아비삼붓닷따(abhisambuddhatta) : 완전한 지혜, 完全智
아비삼보디(abhisambodi) : 최상의 깨달음
삼마삼보디(sammasambodhi) ; 올바른 완전한 깨달음
등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지혜‧ 정견‧ 깨달음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기 보다는 의미의 혼존과 함께 경계가 모호함을 알 수 있다. 이상의 어휘들은 한결같이 삼법인, 사성제 등의 통찰과 관련된 술어들로서, sambodhi를 제외한 나머지는 깨달음에 대한 개념보다는 주로 통찰지혜나 바른 견해로서의 개념이 강하다.
5. 정견(正見), 삼마딧티(sammadiṭṭhi)
한국불교가 ‘깨달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테라와다불교에서는 지혜의 증득, 혹은 지혜의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삼마딧티(sammadiṭṭhi)’를 중요시한다. 붓다께서는 8정성도(八正聖道)의 여덟품목 가운데 가장 먼저 ‘삼마딧티(sammadiṭṭhi)’를 제시하고 있다. ‘삼마딧티(sammadiṭṭhi)’는 괴로움의 근원을 종식시킬, 닙바나를 실현시킬 최상의 지혜인 동시에 수행여정의 출발단계에서 수행자들로 하여금 사성제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윤회의 사슬을 끊을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하는 근본적인 세간의 지혜이기도 하다. 진정으로 괴로움의 완전한 소멸에 이르고자 한다면 붓다의 교의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기본적인 삼마딧티를 갖춘 가운데 수행의 길로 들어설 것을 붓다께서는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테라와다불교에서는 특별히 깨달음을 강조하지 않는다. ‘야타-부-따 냐-나닷사나(yathābhūta ñānadassana, 如實智見)’ 즉 있는 그대로를 바르게 이해하는, 바르고 완전하게 들여다보는 정견(正見), 즉 삼마딧티(sammadiṭṭhi)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8정도 여덟 품목 가운데 정견을 맨 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마치 산을 오르려는 사람이 정상을 한번 올려다본 후에 등산을 시작하는 것과 같이. 불교는 가장 먼저 붓다의 근본교의에 대한 이론적인 이해를 요구한다. 기본적인 이해(정견)를 바탕으로 한 8정도 수행을 통해 현상의 실재를 있는 그대로 알고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칡넝쿨을 뱀으로 착각하지 않고, 안개를 연기로 오인하지 않는, 항상 바르게 들여다볼 줄 아는 실천적 삶이 ‘삼마딧티(sammadiṭṭhi,正見)’다.
삼마딧티는 결코 홀로 생겨나는 법이 없다. 삼마딧티를 중심으로 한 8정도 각각의 품목들이 최적의 조건을 갖추어졌을 때 비로소 바른 삼매가 생겨나고, 통찰지가 생겨나서 ‘正見’이라고 하는 법의 눈이 확립되는 것이다. 법의 눈은 현상을 삼법인으로 보고 사성제를 꿰뚫어서 번뇌의 소멸에 이르게 한다. 조건지어진 삶 속에서 무지가 제거되는 과정도 sammadiṭṭhi고, 뽑힌 후에도 sammadiṭṭhi며, 모든 현상을 바르게 보는 봄의 실천, 앎의 실천, 깨달음의 실천적 삶이 sammadiṭṭhi다. 지금 이 순간 우리들의 몸과 마음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5온 현상을 착각 없이 바르고 온전하게 볼 수 있는 눈, 법의 눈(dhammacakku, cakkukaraṇi, 法眼)이 sammadiṭṭhi다.
6. 정견(正見, sammaditthi)에 대한 오해
삼마딧티(sammaditthi,正見)는 현상에 대해 단지 ‘아! 그렇구나’ 하고 이해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해두어야 한다. ‘正見’은 sammadiṭṭhi의 한자어 번역이다. 한글로는 ‘바른 견해’ 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에서 ‘견해’를 ‘이해’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자어 ‘견해(見解)’는 한국인들에게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생각이나 입장’ 정도로 인식되어져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불교용어와 일상용어 사이에 언어개념에 대한 인식의 오류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삼마딧티(sammadiṭṭhi,正見)의 상대 개념으로서 ‘딧티(diṭṭhi)’가 있다.
딧티(ditthi) : 교리 ‧ 이론 ‧ 견해 ‧ 사색 ‧ 사견 ‧ 근거없는 이론, 믿음
딧타(dittha) : ‘dassati’의 과거분사로서 보이는 ‧ 소견 ‧ 봄 ‧ 시각 ‧ 시력
닷사띠(dassati) : 알다 ‧ 인식하다
닷사나(dassana) : 봄, 지각, 견해, 암시
등의 의미로 빨리어 3장에 쓰이고 있다. 그래서 sammadiṭṭhi는 ‘바른 견해’나 ‘바른 이해’의 의미보다는 ‘올바르게 봄’ 혹은 ‘올바른 견해로써 봄’ 이라는 의미가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스리랑카의 불교석학 월풀라 라훌라 스님이나 빨리어 경전을 영역한 미국의 보디 스님 등은 sammadiṭṭhi를 ‘right comprehention’ 이나 ‘right understanding’이라 하지 않고 ‘right view’라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4. ‘지혜 ‧ 정견 ‧ 깨달음’ 과 관련된 빨리어 용어들
보통 ‘통찰지’로 번역되고 있는 빨리어 ‘빤냐-(paññā)’는 산스크리트어로 ‘prajñā’라 한다. 이것을 중국은 ‘반야(般若)’로 음역했고, 한국은 ‘지혜’ 혹은 ‘반야지혜’로 옮겼다. 결국 ‘반야’는 한국에서 대승불교 지혜의 대명사가 되었다. 빨리어 경전상에는 지혜(智慧)의 의미를 담고 있는 술어들이 다양하게 나온다.
냐-나(ñāna,智), 빤냐-(paññā,通察智), 윗짜-(vijjā,明智),
아-로까(āloka,光明智), 아빈냐-(abhhiññā,超越智),
빠린냐-(pariññā,通達智), 안냐-(aññā,究竟智)
등에서 알 수 있듯이 통찰이나 증득(혹은 깨달음)의 수준에 따라 비교적 체계적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 외,
짝꾸까라니(cakkukaraṇi) : 진리의 눈, 法眼
빠리자-나띠(parijānati) ; 정확하게 알다. 이해하다. 遍知
삿치까따(sacchikata) : 경험된, 증험된, 눈에 보여진
삿치까라나(sacchikaraṇa) : 실감, 경험, 증험, 깨달음
삿치끼리야-아비사마야(sacchikiriyā-abhisamaya) ; 경험에 의한 완전한 이해
아비자-나(abhijāna) ; 경험으로 앎, 철저히 앎, 깨달아 앎,
삼마냐-나(sammañāna) : 올바른 앎, 깨달음, 正智
삼마빤냐-(sammappaññā) : 참된 지혜, 正慧
삼마단냐-(sammadaññā) : 완전한 지혜, 完全智
아비사마야(abhisamaya) : 통찰, 분명한 이해, 現觀
아비삼붓닷따(abhisambuddhatta) : 완전한 지혜, 完全智
아비삼보디(abhisambodi) : 최상의 깨달음
삼마삼보디(sammasambodhi) ; 올바른 완전한 깨달음
등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지혜‧ 정견‧ 깨달음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기 보다는 의미의 혼존과 함께 경계가 모호함을 알 수 있다. 이상의 어휘들은 한결같이 삼법인, 사성제 등의 통찰과 관련된 술어들로서, sambodhi를 제외한 나머지는 깨달음에 대한 개념보다는 주로 통찰지혜나 바른 견해로서의 개념이 강하다.
5. 정견(正見), 삼마딧티(sammadiṭṭhi)
한국불교가 ‘깨달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테라와다불교에서는 지혜의 증득, 혹은 지혜의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삼마딧티(sammadiṭṭhi)’를 중요시한다. 붓다께서는 8정성도(八正聖道)의 여덟품목 가운데 가장 먼저 ‘삼마딧티(sammadiṭṭhi)’를 제시하고 있다. ‘삼마딧티(sammadiṭṭhi)’는 괴로움의 근원을 종식시킬, 닙바나를 실현시킬 최상의 지혜인 동시에 수행여정의 출발단계에서 수행자들로 하여금 사성제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윤회의 사슬을 끊을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하는 근본적인 세간의 지혜이기도 하다. 진정으로 괴로움의 완전한 소멸에 이르고자 한다면 붓다의 교의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기본적인 삼마딧티를 갖춘 가운데 수행의 길로 들어설 것을 붓다께서는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테라와다불교에서는 특별히 깨달음을 강조하지 않는다. ‘야타-부-따 냐-나닷사나(yathābhūta ñānadassana, 如實智見)’ 즉 있는 그대로를 바르게 이해하는, 바르고 완전하게 들여다보는 정견(正見), 즉 삼마딧티(sammadiṭṭhi)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8정도 여덟 품목 가운데 정견을 맨 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마치 산을 오르려는 사람이 정상을 한번 올려다본 후에 등산을 시작하는 것과 같이. 불교는 가장 먼저 붓다의 근본교의에 대한 이론적인 이해를 요구한다. 기본적인 이해(정견)를 바탕으로 한 8정도 수행을 통해 현상의 실재를 있는 그대로 알고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칡넝쿨을 뱀으로 착각하지 않고, 안개를 연기로 오인하지 않는, 항상 바르게 들여다볼 줄 아는 실천적 삶이 ‘삼마딧티(sammadiṭṭhi,正見)’다.
삼마딧티는 결코 홀로 생겨나는 법이 없다. 삼마딧티를 중심으로 한 8정도 각각의 품목들이 최적의 조건을 갖추어졌을 때 비로소 바른 삼매가 생겨나고, 통찰지가 생겨나서 ‘正見’이라고 하는 법의 눈이 확립되는 것이다. 법의 눈은 현상을 삼법인으로 보고 사성제를 꿰뚫어서 번뇌의 소멸에 이르게 한다. 조건지어진 삶 속에서 무지가 제거되는 과정도 sammadiṭṭhi고, 뽑힌 후에도 sammadiṭṭhi며, 모든 현상을 바르게 보는 봄의 실천, 앎의 실천, 깨달음의 실천적 삶이 sammadiṭṭhi다. 지금 이 순간 우리들의 몸과 마음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5온 현상을 착각 없이 바르고 온전하게 볼 수 있는 눈, 법의 눈(dhammacakku, cakkukaraṇi, 法眼)이 sammadiṭṭhi다.
6. 정견(正見, sammaditthi)에 대한 오해
삼마딧티(sammaditthi,正見)는 현상에 대해 단지 ‘아! 그렇구나’ 하고 이해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해두어야 한다. ‘正見’은 sammadiṭṭhi의 한자어 번역이다. 한글로는 ‘바른 견해’ 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에서 ‘견해’를 ‘이해’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자어 ‘견해(見解)’는 한국인들에게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생각이나 입장’ 정도로 인식되어져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불교용어와 일상용어 사이에 언어개념에 대한 인식의 오류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삼마딧티(sammadiṭṭhi,正見)의 상대 개념으로서 ‘딧티(diṭṭhi)’가 있다.
딧티(ditthi) : 교리 ‧ 이론 ‧ 견해 ‧ 사색 ‧ 사견 ‧ 근거없는 이론, 믿음
딧타(dittha) : ‘dassati’의 과거분사로서 보이는 ‧ 소견 ‧ 봄 ‧ 시각 ‧ 시력
닷사띠(dassati) : 알다 ‧ 인식하다
닷사나(dassana) : 봄, 지각, 견해, 암시
등의 의미로 빨리어 3장에 쓰이고 있다. 그래서 sammadiṭṭhi는 ‘바른 견해’나 ‘바른 이해’의 의미보다는 ‘올바르게 봄’ 혹은 ‘올바른 견해로써 봄’ 이라는 의미가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스리랑카의 불교석학 월풀라 라훌라 스님이나 빨리어 경전을 영역한 미국의 보디 스님 등은 sammadiṭṭhi를 ‘right comprehention’ 이나 ‘right understanding’이라 하지 않고 ‘right view’라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