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


상가Saṅgha란 무엇인가? /빤냐와로 스님

관리자
2021-04-21
조회수 999


1. 상가란 무엇인가?


상가라는 말은 「모임, 단체, 조합」등 그룹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붓다는 당시의 인도에서 깨달은 사람들의 집단, 일반사람들의 규범이 되는 집단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상가라고 하는 것은 무집착의 세계, 사람을 차별해선 안 되는 세계, 화합된 세계를 말합니다. 

무조건적으로 자비를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계인 것입니다. 

그러한 집단의 훌륭함은 2500년이 지난 현재, 스리랑카나 미얀마, 태국 등의 테라와다 불교를 받드는 나라들에서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의 사람들은 상가에 대해서 매우 존경하고 신뢰하고 있습니다. 


초기 불교에 있어서의 상가는 진리를 목표로 붓다의 가르침을 실천하려고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었습니다. 

원래의 정의에서는 출가자·재가자라는 것보다, 진리를 체험하려고 결심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즉 불교도는 모두 상가의 멤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상가의 자격이 완전하게 확정되는 것은 예류과(sotāpatti) 이상의 깨달음을 이룬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자격을 취득한 성스러운 사람들(ariya saṅgha)과  자격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puthujjana saṅgha)이라는 2종류의 상가가 있습니다. 

또 다른 상가의 정의는 불교의 출가자 집단을 상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sammati saṅgha). 


사람들에게 의지처가 되는 상가의 자격으로 경전에서는 우선, Supaṭipanno, Ujupaṭipanno, ñāyapaṭipanno, Sāmīcipaṭipanno라는 4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su(잘, 좋게, 진지하게), uju(정확하게), ñā ya(해탈, 열반을 향해 올바르게), sāmīci(여법하게 존경받는 자)라는 의미로, 각각 -patipanno(실천해서 끝냈다)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즉 「진지하게 노력하고, 정확하게 도의 길을 따라가고, 해탈을 향해 올바르게 나아가고, 여법하게 실천하여 끝마친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다음에 Yadidaṁ cattāri purisayugāni aṭṭha purisa-puggalā라는 구문이 있습니다. 이것은 「4쌍8배 」라고 번역되는 말로, 예류도, 예류과, 일래도, 일래과, 불환도, 불환과, 아라한도, 아라한과, 라는 8개의 깨달음의 단계의 어떤 것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도와 ~과라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예류도는 예류과가 되기 위한 길(원인)입니다. 

4개의 깨달음의 단계를 원인과 결과로 나누고 있지만, 이 원인과 결과에는 시간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풍선에 바늘을 찌르면 곧바로 터져버리듯이, 원인이 생기면 거기에 결과도 나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이룬 사람들인 상가는 불교도가 의지하는 대상입니다. 

의지한다고 하는 것은 신앙과는 다릅니다. 

불교에서는 붓다·담마·상가를 목표로 해서 자기 자신이 노력하는 것을 말하며, 

붓다께서는 「 나와 같은 자가 되십시오, 노력해서 여기까지 올라오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붓다는 자기 자신을 우리들을 인도하는 「선한 친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여러분은 아침에 해가 뜨는 모습을 알고 있습니까? 

아침에 해가 뜰 때에는, 먼저 동쪽의 하늘이 밝아집니다. 

동쪽의 하늘이 밝아지는 것은 태양이 떠오르는 징조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것과 같이 비구들이 성스러운 여덟 가지 도에 들어갈 때는 그 징조가 있습니다. 

그것은 선한 친구가 있는 것입니다. 

선한 친구를 가진 수행자는 팔정성도를 성취하는 것을 기약할 수가 있습니다.」 

(상응부 경전 49. 선정 경) 


상가는 붓다의 가르침을 실천해서, 그 가르침이 진실한 것임을 세상에 나타내고, 그 담마를 차세대에게 전하는 역할을 합니다. 

상가가 소멸해 버리면, 불교도 소멸하게 됩니다. 

정말로 맑고 깨끗한 사람들의 집단이 사회에 있으면 모두 안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상가라고 하는 시스템은 어느 사회에나 있는 것이 좋습니다. 

상가가 생겨났을 때, 처음으로 불교가 그 나라에 뿌리 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상가 예경(Saṅgha Vandanā - 상가의 9덕 : Saṅgha guṇa)


상가예경은 붓다의 제자들의 특징에 대해서 서술한 게송입니다. 

원래는 천인들이 붓다·담마·상가에 대해 찬탄한 것으로, 그것을 들은 자들이 좋다고 생각했으므로 사람들이 삼보를 찬탄할 때에 사용하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Su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Uju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Ñāya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Sāmīci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Yadidaṁ cattāri purisayugāni aṭṭha purisapuggalā, esa bhagavato sāvakasaṅgho 

Āhuṇeyyo, pāhuṇeyyo, dakkhiṇeyyo, añjalikaraṇīyo, anuttaraṁ puññakkhettaṁ lokassā ti. 

Saṅghaṁ jīvita pariyantaṁ saraṇaṁ gacchāmi. 

수빠띠빤노- 바가와또- 사-와까상고-, 

우주빠띠빤노- 바가와또- 사-와까상고-, 

냐-야빠띠빤노- 바가와또- 사-와까상고-, 

사-미-찌빠띠빤노- 바가와또- 사-와까상고-, 

야디당 짯따-리 뿌리사유가-니 앗타 뿌리사뿍갈라-, 에-사 바가와또- 사-와까상고-, 

아-후네이요-, 빠-후네이요-, 닥키네이요-, 안잘리-까라니-요-, 아눗따랑 뿐냑껫땅 로-깟사- 띠. 

상강 지-위따 빠리얀땅 사라낭 갓차-미. 


진지하게 수행하는 붓다의 제자들인 상가, 

정확하게 수행하는 붓다의 제자들인 상가, 

올바르게 수행하는 붓다의 제자들인 상가, 

여법하게 수행하는 붓다의 제자들인 상가, 

이분들은 네 쌍의 대장부요, 여덟 무리의 성자들, 

이분들은 붓다의 제자들인 상가이니, 

공양 올릴 가치 있는 분들, 환영할 가치 있는 분들, 

보시 올릴 가치 있는 분들, 합장 공경할 가치 있는 분들이며, 

이 세상에서 비교할 수 없는 복을 심는 대상입니다. 

저는 생명이 다할 때까지 상가를 의지하여 나아가겠습니다. 

  

상가의 아홉 가지 특별한 특성


1) supaṭipanno : su 「선한, 완전한, 진지한」+ paṭipanna (paṭipajjati[paṭi + pad]의 pp.) 「길을 가는 사람」 nom. 「좋은 길을 진지하게 실천하는 사람이다」 

su : 좋다, 바르다, 옳다는 의미와 흐름을 거슬리지 않는다는 의미와 진지하고 성실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paṭipanno는 무엇을 탄 사람, 들어간 사람, 실천하는 사람이란 의미. 

paṭipadā는 道에 들어가는 「것」의 명사로, paṭipanno는 道에 들어가다, 그 道에 이미 오른 「사람」을 가리키는 명사입니다. 

즉, supaṭipanno는 바른 道를 진지하게 실천하는 사람. 

bhagavato : bhagavant의 dat. 「세존의」 

sāvaka-saṅgho : sāvaka 「제자」 saṅgha 「상가」의 nom. 「제자들인 상가는」 

sāvaka의 본래 의미는 목소리를 들어서 배우는 자입니다. 

고대에는 기본적으로 구전으로 여러 지식을 전달하였기에, 스승이 바로 교과서이므로 스승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는 자들을 제자들(sāvaka)이라고 하였습니다. 

saṅgho는 상가를 말하며, 집단 특히 불교 교단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상가눗사띠를 수행하려는 수행자는 조용한 곳에 가서 바깥으로 향하는 마음을 안으로 모두고 수행하는 일에 잘 밀착시켜 마음 깊이 새기기를 ; 진지하게 수행을 잘하는 존귀하신 분의 성스러운 제자들인 상가이며, 바르게 잘 수행하여 물러남 없이 닙바나라는 담마를 향해 나아가는 분들이며, 붓다의 가르침을 공손하게 따르는 제자들의 모임인 상가입니다. 


2) ujupaṭipanno : uju 「올바른·곧은」+ paṭipanno → 「정확하게 (열반에 이르기 위해) 올곧은 길을 걷는 사람이다」 

uju는 바른 것이라도, 멀리 돌지 않고 가장 빨리, 가장 가까이, 가장 정확하게, 가장 똑바르게 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즉, ujupaṭipanno는 똑바로 깨달음이라는 목적을 위해 정확하게 대상을 알아차리고, 정확하게 도에 들어가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일반 재가자의 경우는 깨달음보다도 천상에 태어나고 싶다든가, 세속적인 행복을 위해 공덕을 쌓는 것을 추구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지만, 붓다께서 살아계셨을 때의 출가자는 깨달음이라는 목표를 향해 곧장 나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서, 그 길로 똑바로 나아가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상가눗사띠를 수행하려는 수행자는 조용한 곳에 가서 바깥으로 향하는 마음을 안으로 모두고 수행하는 일에 잘 밀착시켜 마음 깊이 새기기를 ; 정확하게 수행하는 존귀하신 분의 성스러운 제자들인 상가이며, 닙바나에 이르기 위해 굽지 아니한 올곧은 수행을 하는 분들이며, 양극단을 피한 중도의 바른 수행을 잘하는 분들이며, 붓다의 가르침을 공손하게 따르는 제자들의 모임인 상가입니다. 


3) ñāyapaṭipanno : ñāya 「올바른·진리·방법」+ paṭipanno → 「올바르게 진리의(즉 열반에의) 길을 걷는 사람이다」 

ñāya는 올바른 수행을 의미합니다. 

ñāyapaṭipanno는 올바르게 수행하면서 道에 들어간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상가눗사띠를 수행하려는 수행자는 조용한 곳에 가서 바깥으로 향하는 마음을 안으로 모두고 수행하는 일에 잘 밀착시켜 마음 깊이 새기기를 ; 올바르게 수행하는 존귀하신 분의 성스러운 제자들인 상가이며, 올바르게 닙바나를 알고 정확하게 닙바나를 향한 길을 걷고 있는 분들이며, 붓다의 가르침을 공손하게 따르는 제자들의 모임인 상가입니다. 


4) sāmīcipaṭipanno : sāmīci 「적절한(존경하기 적합한)」+ paṭipanno→ 「존경받기에 적당한 길을 걷는 사람이다」 

sāmīci : 적절하게 체험하면서, 여법하게 경험하면서라는 의미입니다. 

즉, sāmīcipaṭipanno는 자애의 명상이나 위빳사나 수행 등에 의해 좋은 영향을 받으면서, 다른 앞선 자들처럼 담마를 똑같이 경험하면서, 道에 들어간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상가눗사띠를 수행하려는 수행자는 조용한 곳에 가서 바깥으로 향하는 마음을 안으로 모두고 수행하는 일에 잘 밀착시켜 마음 깊이 새기기를 ; 여법하게 실천하여 존경받을 만하게 수행하는 존귀하신 분의 성스러운 제자들인 상가이며, 업의 고통에서 벗어나기에 적당한 수행을 잘하는 분들이며, 테라들의 가르침을 따라서 담마를 똑같이 경험하며 도와 과에 들어가는 분들이며, 붓다의 가르침을 공손하게 따르는 제자들의 모임인 상가입니다. 


yadidaṃ : yad 「~은」+ idaṃ 「이것은」 → 예를 들면. 

cattāri : catu「4 부분」의 n. nom.  

purisayugāni : purisa 「사람」+ yuga 「쌍·대칭」의 pl. nom.  

aṭṭha : 「8」 

purisa-puggalā : purisa-puggala 「사람」의 pl. nom.  

esa : etad 이것이 

이 분들은 예류도, 예류과, 일래도, 일래과, 불환도, 불환과, 아라한도, 아라한과라는 깨달음의 네 개의 단계와 그것을 향하고 있는 사람, 즉, 4쌍 8배의 장부들을 말합니다. 


5) āhuṇeyyo : āhu 「공양하다」의 grd. (미래 수동분사)의 nom. 「덕이 높은 분으로 멀리서 가져온 귀한 공양물을 받기에 적당한 사람」 

상가눗사띠를 수행하려는 수행자는 조용한 곳에 가서 바깥으로 향하는 마음을 안으로 모두고 수행하는 일에 잘 밀착시켜 마음 깊이 새기기를 ; 이러한 상가는 덕이 높은 분들로 공양 올릴 가치 있는 분들이며, 멀리서 가져온 귀한 것을 공양 받으실 만한 자격이 있는 분들입니다. 


6) pāhuṇeyyo : (pāhuna 「손님」) 「손님으로서 (환영·접대받기)에 적당하다, 존경할 가치가 있는 사람」 

상가눗사띠를 수행하려는 수행자는 조용한 곳에 가서 바깥으로 향하는 마음을 안으로 모두고 수행하는 일에 잘 밀착시켜 마음 깊이 새기기를 ; 이러한 상가는 환영할 가치 있는 분들이며, 귀한 손님으로서 대접하는 공양을 받을 자격을 충분히 갖추신 분들입니다. 


7) dakkhiṇeyyo : 「공덕을 믿고 공양올리는 것(을 받기)에 적당하다」 

dakkhiṇā란 다음 세상을 믿고 보시하는 것을 말하는데, 상가는 공양물 받는 것에 적합하기에 보시올린 자에게 이익이 됩니다. 큰 과보를 가져오는 것에 의해 보시물을 맑고 깨끗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상가눗사띠를 수행하려는 수행자는 조용한 곳에 가서 바깥으로 향하는 마음을 안으로 모두고 수행하는 일에 잘 밀착시켜 마음 깊이 새기기를 ; 이러한 상가는 보시 올릴 가치 있는 분들이며, 큰 과보를 가져오는 공양물을 받을 자격을 충분히 갖추신 분들입니다. 


8) añjalikaraṇīyo : añjali 「합장」+ karaṇīya(karoti의 grd. 되어야 하는 것)의 nom. → 「합장예배를 받기에 적당하다」 

상가눗사띠를 수행하려는 수행자는 조용한 곳에 가서 바깥으로 향하는 마음을 안으로 모두고 수행하는 일에 잘 밀착시켜 마음 깊이 새기기를 ; 이러한 상가는 합장하여 예를 올리기에 적당한 분들이며, 존경하며 따를 가치 있는 분들입니다. 


9) anuttaraṁ : 「무상의」 

puññakkhettaṁ : puñña 「福德」+ (k) khetta (n. nom. ) 「田·토지」 

lokassā : loka 「세상·세계」의 dat. → 「세계의」 

상가는 사람들에 있어서 공덕을 얻기 위한 논과 같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중생들이 선업을 지을, 이 세상에서 비교할 수 없는 복을 심는 대상입니다. 

사람들이 붓다·담마·상가라는 삼보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공덕이 필요합니다. 

이 삼보 가운데에서 사람들이 다가가기 쉬운 것은 상가입니다. 


붓다와 담마는 공덕이 없으면 친견할 수가 없고, 이해하여 실천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상가가 있다는 것은 공덕을 얻을 논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적은 양으로도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고, 힘들 때 사람들이 용이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도 상가입니다. 

상가를 통하여 붓다와 담마를 배우고 실천하여, 붓다와 담마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상가의 공덕을 거듭 거듭 생각합니다. 

이러한 수행자에게는 탐, 진, 치로 마음의 괴로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상가의 공덕을 생각하는 마음이 반듯해집니다. 장애가 사라지고 선정이 생깁니다. 

깊은 선정에는 이르지 못하지만, 이것이 바탕되어 위빳사나 지혜가 일어나게 합니다. 


saṅghaṁ : saṅgha 의 acc. 「상가에」 

jīvita : 「생명」 

pariyantaṁ : pariyanta 「한계·끝」의 acc.  

saraṇaṁ : 「의지처에」 

gacchāmi : gacchati의 sg. 1st. 「( 나는) 간다」 


saṅghaṁ jīvita pariyantaṁ saraṇaṁ gacchāmi.(나는 생명이 다할 때까지 상가를 의지하여 나아가겠습니다)를 saṅghaṁ yāva nibbānaṁ saraṇaṁ gacchāmi. 

(나는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상가를 의지하여 나아가겠습니다)라는 표현으로도 사용합니다. 


3. 율장에서의 상가 


율장에서의 상가는 네 명 혹은 다섯 명 혹은 열 명 혹은 스무 명 혹은 그 이상의 무수한 비구, 비구니의 모임입니다. 

우선 율장에서 정의되고 있듯이, 상가란 비구(혹은 비구니)가 최소 네 명이상 모이면 성립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것은 동일한 구역 내가 아니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그 지역에 비구 혹은 비구니가 세 명 이하 밖에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 땅에 상가를 구성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동일 구역 내에 비구 세 명과 비구니 한 명, 이렇게 네 명이 있을 경우는 어떨까요? 

비구와 비구니를 합하여 네 명이 되어도 역시 상가를 구성할 수 없습니다. 

비구라면 비구만으로 네 명 이상, 비구니라면 비구니만으로 네 명 이상이 최저 필요합니다. 그래서 비구 상가, 비구니 상가라고 일컬어집니다. 

비구 또는 비구니가 세 명 혹은 두 명만 존재할 경우는 「모임」을 의미하는 빨리어 단어 중에 Vagga(왁가)혹은 Gaṇa(가나)라고 칭하며, 한사람만일 경우는 「수행자」또는 「사람」을 의미하는 Purisa(뿌리사)라고 칭하여, Saṅgha(상가)와 구별합니다. 

어쨌든 상가란 「네 명 이상의 비구(또는 비구니)의 모임」을 가리켜 말하며, 재가 신자를 포함하지 않는 출가자 집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상가란 붓다의 입멸후의 세상에서, 붓다가 설하신 담마를 실천해 나가는 출가자를 가리키는 것이며, 붓다를 대신하여 세상 사람들을 이끄는 의지처이며, 붓다의 가르침을 계속 전하는 배와 같기에 공양 받을만한 분이라는 의미가 상가입니다. 


그런데 비구니 상가는 12세기 중순 스리랑카에서 비구니 상가의 전통이 끊어지고 나서 여성이 정식적으로 출가할 수 없는 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상가에서 우선 중요한 것은 비구 상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평등과 화합 


상가에 있어서의 「평등」이란 세계 모든 나라·지역에서 존재하고 있는 사람들의 출신성분이나 혈통에 의거하는 신분 차별 등을 모두 배제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사람이 출가 이전에 고귀하고 신분이 높은 지위에 있었다고 해도, 또는 사회로부터 천한 존재라고 차별되었다고 해도, 신체적·정신적으로 건전하고, 부모님의 허가를 얻는 것 등의 조건을 채운 출가희망자는 누구든지 상가의 구성원인 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상가에서는 세속 사회에서의 신분적 고하·나이 등이 중요하지 않아서, 누구라도 대등한 존재로서 다루어집니다. 


이와 같이 상가는 신분으로서의 상하는 없지만, 단지 수계하고 나서의 연수에 의하여 반떼(먼저 출가한 자)와 아우소(뒤에 출가한 자)로 구별되게 됩니다. 

이 수계하고 나서의 연수를 법납이라고 해서, 이 연수가 높은 사람으로부터 순서대로 윗자리가 정해지며, 그 법납이 많은 사람(10년 이상 혹은 20년 이상의 2가지 설이 있음)은 장로(Thera)로 불립니다. 

그러나 수계하고 나서의 연수가 상가 구성원 중에서 가장 많은 최상의 장로 비구하고 해도, 개인적인 의견으로 상가에 지시하거나, 독단으로 상가를 움직이는 것 등은 할 수 없습니다. 

겨우, 지식과 게으르지 않고 실천하는 힘을 갖춘 선배(dhira)로서, 또는 지식을 갖춘 자(Pandita)로서 조언을 하는 정도입니다. 

상가는 회사의 사장과 같이 그 운영을 혼자서 할 수 있는 지도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굳이 말하라면, 「율」이 상가의 지도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상가에 있어서의 「화합」이란 율장의 규정을 준수하는 것을 전제로 한 「전원 참가·전원 일치」를 의미합니다. 

즉 화합이란 동일한 수계의식이나 참회의 의식, 동일한 포살을 말합니다. 

동일갈마·동일포살이란 간단하게 말하면 「상가에 있어서의 회의 혹은 행사를 전원 참가로 실시하는 것」·「상가의 가장 중요한 의식의 하나인 포살(설계)을 전원 참가로 실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병 등으로 그 의식에 참가할 수 없는 경우는 다른 비구에게 출석하지 못하는 이유를 전해서 거기서 결정되었던 것에 대해 나중에 불평하지 않는 것 등을 위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회의은 완전한 합의제입니다. 

무슨 일이든 찬반을 가려야하는 의제가 있어 회의가 열렸을 경우, 우선 전원이 참가한 다음, 그 전원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원칙으로서 그 의제는 각하 됩니다. 


2) 상가의 운영 방법 


상가에서의 회의 진행 방법은 한사람의 대표자가 의제를 참가자 전원에게 1회 고지합니다. 

그리고 다음에 의제의 내용에 대해  1회 혹은 3회까지 그 찬반을 묻습니다. 

참가자는 찬성이면 침묵하고, 반대하면 그 취지를 발언하면서 진행합니다. 

이와 같이 의제에 대해서 그 찬반을 1회만 묻는 경우를 [백이갈마], 3회라면 [백사갈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백]은 「의제의 제의」이며, [갈마]는 「승인을 구하는 것」이라고 파악하면 좋을 것입니다. 

다만 상가에서 어떤 것은 고지하는 것만으로 그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단백갈마]혹은 [백일갈마]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불교가 넓은 세계 각 지역에서 신앙되어 비구들이 다양한 나라나 지역에서 활동하게 되기에, 「전원 참가」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실제, 상가에서는 한 달에 2회 [Uposatha, 포살]혹은 [Pāṭimokkha, 설계]이라는 비구 전원이 반드시 참가해야 하는 의식이 있습니다. 

또한, 어떤 것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의제가 있었을 때도 그 상가 전원이 참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넓은 지역을 보다 좁은 구역으로 분할하면 거기에 사는 비구들에 의해 하나의 상가를 형성하게 되어 비구들의 이동의 부담은 가벼워지고, 화합도 얻을 수 있기 쉬워져서, 여러 가지 행사도 원활히 진행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이와 같은 것으로 인해 상가는 최소 4명의 비구가 모이면 성립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가의 행사 모든 것을 실행하는데 필요한 20명 이상의 비구가 모여  상가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상가에는 5 종류의 구별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류라는 것보다 상가를 형성하고 있는 비구의 인원수에 의해, 그 상가가 실행할 수 있는 것에 제한이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다섯은, 

4명의 비구상가(catuvaggo bhikhusaṅgho), 

5명의 비구상가(pañcavaggo bhikhusaṅgho), 

10명의 비구상가(dasavaggo bhikhusaṅgho), 

20명의 비구상가(vīsativaggo bhikhusaṅgho), 

20명 이상의 비구상가(atirekavīsativaggo bhikhusaṅgho)입니다. 


4명의 비구상가는 구족계를 주는 것, 자자를 행하는 것, 거죄갈마를 행하는 것의 세 가지 갈마를 제외하고, 나머지 일체의 갈마에 대해 여법하게 갈마를 할 수 있습니다. 

5명의 비구상가는 구족계를 주는 것, 거죄갈마를 행하는 것의 두 가지 갈마를 제외하고, 나머지 일체의 갈마에 대해 여법하게 갈마를 할 수 있습니다. 

10명의 비구상가는 거죄갈마를 행하는 것의 한 가지 갈마를 제외하고, 나머지 일체의 갈마에 대해 여법하게 갈마를 할 수 있습니다. 

20명의 비구상가는 일체의 갈마에 대해 여법하게 갈마를 할 수 있습니다. 

20명 이상의 비구상가는 일체의 갈마에 대해 여법하게 갈마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대부분의 갈마는 4인 이상의 비구상가에서 행할 수 있고, 구족계를 주는 것은 10인 이상의 비구상가에서 행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부득이한 경우에는 계율에 밝은 비구(vinayadhara)가 참석하는 조건으로 5인 비구상가로도 행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자자는 5인 이상의 비구상가에서, 거죄갈마는 20인 이상의 비구상가에서 행하여야만 하기에, 실제적으로는 거죄갈마를 제외하고는 5인 이상의 비구상가에서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다고 보면 됩니다. 


이와 같이 구족계를 받은 비구가 최소한 4명 이상이면 상가가 성립되고, 실제적으로 5명 이상의 상가에서 거의 대부분의 상가기능들을 핼할 수가 있기에, 지역적 한계인 시마(sīmā, 결계)를 정하고, 포살 등 갈마작법을 행하면 상가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현재의 ‘한국 테라와다 불교’는 교단으로서의 상가 기능을 행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율장에 근거한 상가는 지역으로서의 단락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종파 등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상가는 울타리가 없는 평등한 것이며, 본래 하나의 것이기에, 상가는 평등하고, 목적을 같이 하는 동지인 것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파악해도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3) 상가일원으로서 실패의 원인  


① 계율에 대한 심한 불만족이나 싫증남. 

② 주체할 수 없는 식탐. 

③ 감각적 즐거움에 대하여 커지는 욕망. 

④ 성적 탐욕 


4) 성스러운 상가를 위한 이상적인 방법  


① (pāṭimokkha saṁvara 빠-띠목-카 상와라)계율에 따라 금지된 것을 멀리하고 허락된 것을 실천할 것. 

② (indriya saṁvara 인드리야 상와라) 감각의 제한 :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고 그리고 심지어는 생각할 때조차 자신을 지킬 것. 말하자면 어떤 순간에도 기쁨이나 슬픔에 압도되지 않을 것. 

③ (ājīva pārisuddhi 아-지-와 빠-리숫디) 제한된 올바른 수단으로 허물없이 생활할 것. 

④ (paccaya paccavekkhanā; 빳짜야 빳짜웩-카나-) 먹고 마시고 또는 필수품을 사용하는 순간에도 감각적인 기쁨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자신을 돌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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