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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철학사상-브라흐만 사상체계_냐나로까 스님 법문_테라와다법석(120406)

관리자
2024-11-10
조회수 1772


* 인도의 철학사상-브라흐만(brahman) 사상체계_냐나로까 스님법문_테라와다법석(120406)

 

자, 오늘은 지난번까지는 강의에 들어가기 전에 불교에 대한 특징과 그다음에 초기 불교를 왜 공부해야 되느냐, 거기에 대해서 법문을 하였습니다. 오늘은 강좌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초기 불교의 그 부처님 말씀의 원음을 공부하는 방법에 있어서 먼저 불교를 이해하기, 초기 불교 그 자체를 공부하기 전에 초기 불교가 그러니까 고따마 부처님에 의해서 창출된 그 불교라는 사상, 철학사상 그것이 태동된 시대적 배경, 그 당시의 사상의 경향, 이런 것을 먼저 알아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그것을 짚어봄으로써 붓다의 원음을 원음이 자연스럽게 어떤 실루엣이 이렇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모든 사상체계는 그 시대의 경향을 반영하고 있고 구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사상 체계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것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과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당시의 사상적 경향을 반드시 먼저 들여다 봐야 됩니다. 

붓다께서 그러니까 고타마 싯달타라는 이름을 가진 그런 한 생명체가 태어날 때 인도의 사상계는 굉장히 복잡했습니다. 왜 복잡했느냐? 

 

인도의 전통사상이라는 것은 여러분 잘 알다시피 브라만 사상입니다. 브라흐만 사상입니다. 

이것은 시원적으로는 약 BC5천년 모헨조다로 시대 때부터 그 기원이 거슬러 올라가집니다. 붓다가 태어난 시기가 약 BC600년, 그러니깐 한 4500년 동안을 탄탄하게 브라만 사상이라는 체계가 인도 전체의 사상기를 지배해 왔단 말입니다. 

그리고 붓다가 태어나실 그 즈음에는 그 4500년 동안 유지가 되어 온 지속되어 온 브라만 사상에 대한 수많은 안티(anti)가 일어납니다. 그거에 대한 반대 사상이 일어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한 사상이 너무 오랫동안 지속될 때 그거에 대한 안티가 일어납니다. 근데 그 안티는 수많은 안티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수많은 안티와 전통사상 이것이 공존했던 그런 시대에 붓다는 태어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붓다가 태어났을 그 시대는 사상적으로 굉장히 혼잡할 수밖에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붓다가 태어나신 그 즈음에 인도에서는 어떤 사상들이 흐르고 있었느냐? 

그거에 대한 공부를 좀 하겠습니다. 시간상으로 이것이 오늘 1일 강의로 끝날 수 있을 것인가, 다음 시간까지 연장이 될 것인가는 저도 확실히 잘 모르겠네요. 

 

먼저 이 브라흐만(brahman) 사상 체계에 대해서 좀 알아보겠습니다. 


이걸 자세하게 알아볼려면 뭐 인도 철학사 전체를 공부해야 되는 부분이니까, 그거는 우리의 몫이 아닌 것 같고, 브라만 사상 체계의 핵심만 좀 훑어보겠습니다. 

이 브라흐만 사상을 보면 이 브라흐만 사상이 체계적으로 기술되어 있는 서적은 4개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베다' 그다음에 '브라흐마나' 그다음에 '아란야카', 삼림서라고 합니다. 숲속에서 비의를 전달한다는 그런 의미에서 "삼림서"라고 합니다. 

그다음에 우리 귀의 매우 익숙되어져 있는 언어 '우파니샤드' 그래서 4개의 기록이 브라만 사상의 종교와 철학사상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대표되는 제일 먼저 형성된 것이 베다인데요. 

이 베다 시대는 자연계의 여러 가지 현상들, 뭐 자연계는 인간을 공포와 두렵게 만드는 여러 가지 현상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뭐 태양의 빛이라든가 빛은 인간들한테 굉장히 필수불가결한 그런 요소입니다. 근데 빛이 가리워졌을 때는 인간은 공포를 느끼죠. 그런 자연계 현상, 뭐 천둥 번개 뭐 여러 가지 이런 자연계의 현상들, 그다음에 그 자연계 현상이 가지고 있는 위력, 또 자연을 설명할 수 있는 구성 요소들, 추상적 관념, 이런 것들이 전부 다 신격화되어서 그 자체를 숭배의 대상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은 꼭 브라만교뿐만 아니라 대개의 원시 종교에서 보여주고 있는 내용이라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겠죠. 브라만 사상도 처음에는 그 틀을 그 프레임을 벗어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는 다신교적 시대다. 자연 현상 개개가 하나의 신격화되어 있는 천둥신은 천둥신 별도로 있고 번개 신은 번개신 따로 있고 이런 식으로 비가 오면 물의 신이 따로 있고 이런 식으로 다신교적인 시대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베다 시에 있는 그 많은 신들을 33신으로 함축시켰습니다. 

그 삼십삼신이 존재하고 있는 존재의 영역은 하늘과 땅과 그 사이의 공간, 그게 나누어져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필요에 따라서 그 33천 중에서 어느 한 신을 권청을 하게 됩니다. 불러오게 됩니다. 불러와서 공물을 바치고 그 신에 제사를 지냄으로써 구원을 받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내는, 그러니까 초기 원시 종교의 그런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죠. 

 

그러다가 여러 이런 천신들 이것이 신의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점점 의인화됩니다. 인격신이 됩니다. 인격신.

우리 현대 종교도 마찬가지죠 특히 이제 흔히 사회에서 담론되고 있는 불교의 반대편에 서있다고 생각되어지는 기독교나 개신교, 여기서 보면 처음 야훼 여호와 야훼신이라는 것은 유대교적으로 야훼신은 조금 다릅니다마는, 유대교적 야훼신은 원래는 전쟁신이었습니다. 근데 그것이 이제 통합 신으로서 그리고 또 우주론의 발생을 책임지는 그런 창조신이 되어버리죠. 그러다가 그런 본체론적인 신이었다가 그것이 점점점점 인간의 필요성에 의해서 인격신이 돼 버립니다. 인격신이. 

 

그와 마찬가지로 베다 종교에서도 그렇습니다. 자연현상 그 자체가 그 자체로 하나의 신이었다가 거기에 점점 인격이 부여가 됩니다. 인격신이라는 것은 뭡니까? 내가 지금 작년에는 농사를 망쳤어. 이 농사를 잘되기 위해서는 인간과 똑같은 그런 권능이 있는 자를 모셔다가, 내가 공물을 바치고 제사를 지냄으로써 그 자가 자유 의지가 있어서 나를 도와주는, 이런 성격의 힘이 돼 버립니다. 그래서 이제 그 많은 신은 인격신이 됨으로써 되고, 그 인격신은 점점점점 하나의 신으로 통합이 됩니다. 

그래서 많은 신들이 있지만 결국 그거는 한 신의 다른 명칭일 뿐이다. 그렇게 보는 사상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때 그 다신교적인 사고방식이 일신교적인 사고방식으로 되며 거기서 창조론이 발생이 됩니다. 그때 '프라자빠띠' 라는 한 생주신을 설정하게 되는데요. 그 쁘라자빠띠가 곧 우주만물을 창조를 하였다. 이런 창조론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이제 브라만 문화 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쁘라자빠띠 라는 창조신은 그다음에 브라흐마 신으로 바뀝니다. 브라흐마 신으로. 그래서 브라흐마는 우주 만물을 다 싸잡는 유일신이 돼요. 그리고 이 유일신이 모든 만물을 창조를 하고, 창조를 해놓고는 창조를 한 그 존재의 개체 개체에 자기가 들어가게 돼. 그래서 그 개체를 본체화시킵니다. 본체화시킨 그것을 '아트만(atman)'이라고 합니다. 


요 과정을 여러분들이 잘 이해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우주 삼라만상을 다 싸잡는 일신이 있었다. 일신이 있었다. 그게 '브라흐마(brahma, 梵天)'다. 이거는 유일신입니다. 그러니까 일원론적이지요. 

그런데 브라흐마 신이 곧 창조신이라고 했습니다. 혼자 우주의 본체도 되지만 본체에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브라흐마가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존재를 창출하게 돼. 여기 창조, 그래서 창조신이 돼버립니다. 창조를 한 존재의 그 개체 개체, 그 개체 안에 브라흐마가 들어가게 됩니다. 

개체 안에 이 브라흐마 자체는 뭡니까? 본체지요. 우주의 본체지요. 

그 우주의 본체가 개체 개체 안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그 개체는 본체로서의 개체가 됩니다. 그렇죠? 본체로서의 개체가 될 것 아닙니까? 이런 본체로서의 개체가 된 존재를 이 '아트만'이라고 합니다. 

 

브라흐마는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연하게 아트만도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걸 '지와 아트만'이라고 합니다. 이 지와라고 하는 것은 명이거든요. 생명이라고 해도 좋고 영혼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영혼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이 아트만이, 지와 아트만이. 

 

우리에게는 삶이 중요하지요. 이 삶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2개가 있습니다. 

첫째는 나고 두 번째는 대상입니다. 그죠. 나와 대상과의 상관관계가 삶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이거는 불교의 관점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관점이 이렇습니다. 자, 그러면 이 아트만도 나와 대상 요 두 가지의 문제가 발생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아트만이 이 지와 아트만이 나 속에 들어간 것 이것을 '자아(自我)'라고 한다. 요게 '아트만'입니다. 요게 아트만입니다. 

이 개체 안에 들어간 것 본체적인 개체 이걸 '뿌루샤'라고 합니다. 

결국 브라흐마, 뿌루샤, 아트만은 다 같은 겁니다. 같은 개념의 이명이다, 다른 명칭일 뿐이라는 것이죠. 

 

그다음에 요 '지와 아트만' 이 '뿌루샤'가 어디로 들어갑니까? 

대상 속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대상의 아트만이 돼. 즉 본체가 돼. 그래서 이것을 우리는 '자아'라고 그러고 이걸 '법아'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자아, 법아, 브라흐마는 결국은 다 동일한 본체에서 나왔다. 이것이 브라흐만 사상입니다. 정리를 하면 핵심적인 것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경로를 거쳐야 돼. 근데 이것입니다. 이것. 

 

요런 전체적인 프레임을 두고, 그다음에 조금 구체적인 것을 몇 가지 좀 언급을 하겠습니다. 


아까 창조신이 쁘라자빠띠 대신에 브라흐만과 우주를 창조한 인격신이 된다. 그리고 인격신임인 동시에 그 자체가 우주의 본질이다. 우주의 본체, 본질이다. 이런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뭐냐면은 그 브라흐만과 인간이 어떻게든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야 구원을 받는 걸로 구원을 받을 것 아닙니까? 

그 브라흐만과 직접 연결을 할 수 있는 자가 소위 말하는 브라흐마입니다. 사제(司祭), 브라만교의 승려. 이자들은 직접 브라흐만과 교감이 가능하고 연결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제사는 일반인들이 스스로에 의해서 제사가 지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죠. 

이 사제를 통해서만 브라흐마하고 연결이 되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제를 찾아가서 제사를 의탁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를 좌우하는 이 사제가 절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절대적인 존재가 됩니다. 

 

그래서 바라문 지상주의 사회를 실현시켰습니다. 이런 시기가 바라문교 문화의 제2 두 번째 시기가 됩니다. 

이때가 BC 천년에서 BC 800년 정도, 붓다가 태어나시기 바로 직전까지의 브라만교의 사상체계라고 할 수 있겠죠. 

 

근데 이 과정에서 사제가 절대적인 위치에 있게 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은 브라만교에서도 욕망을 굉장히 중요한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유일신이 있었는데, "창조를 하는 수많은 존재를 창조하는 원인이 뭐냐? 욕망이다."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욕망이다. 

사제 역시 이런 절대적인 권력을 지니게 된 사제 역시 절대적 권력을 내놓고 싶겠습니까? 이걸 계속 지속시키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죄의 권한은 제사에 있습니다. 제사의 의식, 제사의 양식, 이것을 자기만 딱 붙잡고 있는 거라. 그러니까 이걸 다른 사람들한테 객관적인 측면에서 알리질 안 해. 특정한 부류에게만 알린단 말입니다. 

그 알리기 위한 기술 기록이 아란야카 입니다. 삼림서 입니다. 

 

이 삼림서는 주로 그 브라흐마들이 숲속에서 자기 제자들을 불러다가 “니만 가르켜 줄게” 다 요렇게 전달을 한 내용들이다. 그 내용은 주로 뭐냐? 제사의 양식입니다. 

그래서 힌두교에서는 지금의 힌두교 과거의 브라만교는 의식이 굉장히 복잡해. 그 청춘 남녀가 만나가지고 사랑하다가 이제 결혼에 골인을 합니다. 그러면 힌두사원에 가서 브라만 사원에 가가지고 결혼식을 올립니다. 결혼식이 하루종일 걸려. 굉장히 그 절차가 복잡합니다. 그러니까 일반인들이 흉내를 내지 못하게 해야 될 거 아닌가. 그래서 삼림서라는 기술적 장치에 의해서 절대적 지위를 그냥 지속을 시킵니다. 유지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누구나가 이런 주관적인 관점만 가지고 있다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호응을 받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소위 말해서 보편 타당성적인 뭐를 드러내야 돼. 그러니까 객관성 이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러지 아니하고는 권위가 없어져 버립니다. 왜냐? 

권위라는 것은 단순한 권력이 아니라 그 권위가 권위로서 지속되기 위해서는 뭐를 필요로 합니까? 합리성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보편타당적인 어떤 객관성을 부여해 줘야 돼. 

 

그래서 이 삼림사가 종교의식만 담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사색으로 이제는 나아가게 됩니다. 철학적 사색으로. 삼림서에서부터 이 철학적 사색이 보입니다. 그러다가 그 사색이 매우 깊어져 있는 그런 기술이 보인 것이 '우파니샤드'입니다. 

그래서 우파니샤드에 이르르면 신앙적 요소 종교적 요소의 색채는 굉장히 가버리고, 철학적 요소들이 아주 두드러지게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제 그런 모습만 보고 인제 현대에 있어도 우파니샤드가 뭐 대단한 어떤 진리 소위 말하는 객관적 진리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요. 그러나 그 우파니샤드도 역시 아까 이야기했던 요 책의 저 프레임을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근데 불교는 이 사상체계의 안티예요. 완전히 이거하고는 반대되는 것, 즉 이거는 절대주의적 사과방식이거든요. 절대주의라는 것에 여러분 주목을 하십시오. 우주의 본체 다음에 이거는 존재, 존재의 개개 존재의 본체, 그걸 뭐라 하냐면 '존재자'입니다. 


존재자라는 것은 존재가 A라는 존재가 B라는 존재로 변한다 하더래도 그 존재자는 변하지 않는다, 항상 동일자다, 이게 본체지 않습니까? 이것이 본체입니다. 그러니까 이거는 절대주의적 사고방식입니다. 이것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우파니샤드 철학이라는 것은 바로 이 절대주의 철학입니다. 

그런데 불교라는 것은 이거에 대한 안티거든. 이것을 전면적으로 부정한 겁니다. 

그래서 브라흐마라는 브라흐만 사상이라는 것은 절대주의적 사고방식이다. 철학이다. 


근데 어쨌든 간에 이 유일한 태초의 유일한 유가 있었어. 그 유일한 유는 어디서 나왔느냐? 그거는 설명할 수가 없어. 처음부터 있었다라는 거야. 처음부터. 왜? 신이기 때문에! 신은 어떤 원인에 의해서 결과가 생긴 게 아니라고 그랬죠. 

처음부터 있었다. 그 원인을 이야기하지 말아라. 근데 그것이 욕심을 일으켜서 지수화풍의 4대 요소를 발생시키고 그것이 화합하여서 수많은 복합물이 됐는데, 그것을 화합시킨 장본인이 곧 브라흐마다, 브라흐마이다. 


그래서 개개의 복합물이 복합물이 개체가 되긴 되었는데 그 개체 안에 브라흐마가 들어감으로써 그 개체의 본체가 된다. 그것을 우리는 '아트만'이라고 한다. 

그러면 우주의 본체인 브라만과 개체의 본체인 아트만은 동일한 것이다. 하등의 거기에는 조금의 차이도 없다. 이렇게 해서 '범아일여' 사상을 낳습니다.

범아일여(梵我一如)라는 것은 모든 것, 에브리씽(everything). 그 다음에 아(我)라는 나 개체 개체, 이것은 결국 동일한 것이다 라는 사상을 낳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범아일여의 이런 지혜, 이런 지혜에 의해서 선정을 닦음으로써 인간은 영원한 자유 즉 해탈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런 주장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브라흐만' '아트만' 그 다음에 '해탈' 그리고 해탈을 하기 전에 이런 과정에서 인간에게는 형성된 것이 있는데, 그걸 '깜마-업', 이 4가지가 우파니샤드의 중요한 사색의 주제가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제 중요한 것은 해탈은 실은 이 생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생에서 열심히 선정 수행을 닦아서 닦으면 '타파스' 지금 우리 현대 언어로 하면 열적 에너지입니다. 열에너지라고 할 수 있죠. 물리적으로 이야기를 하면. 이것을 얻는다. 선정을 하게 되면 열에너지를 얻는다. 이 충만한 열에너지가 형성이 되면 죽어서 천상에 태어난다. 그러면 거기에서 해탈이 된다. 이제 이런 논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붓다가 태어날 당시는 인도의 전통사상인 브라흐만은 브라만 사상은 이 정도의 논리체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제 몇 가지를 우리가 좀 주목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브라흐마들은 자기의 권위와 자기 신분 유지를 위해서 4가지 계급제도 카스트 제도를 만들게 됩니다. 이 카스트 제도는 인간이 브라흐마들이 어떤 사회의 융화와 이런 것을 위해서,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만들어 놓은 단순한 제도가 아닙니다. 여기 좀 주목을 해야 합니다. 

 

요 과정을 우파니샤드 문헌 중에 원음을 좀 우리가 잠깐 살펴봄으로써 이 부분들을 한번 더불어서 이해를 해보기 바랍니다. 

앞에 거는 다 필요가 없고 또 이것은 꼭 암기를 하거나 이럴 필요가 전혀 없어서, 그냥 흘러가듯이 여러분들이 이해를 하면 되기 때문에 어떤 교재로써 따로 제가 프린트를 안 만들었습니다. 그냥 듣고 흘려보내십시오. 흘려보내도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여러분 내면의 어딘가에 반드시 잊게 됩니다. 이런 글자가 대목이 있습니다. 

 

우파니샤드에 보면 "진정으로 태초에 이 세계는 브라흐만이었네. 그것은 자기자신만을 알았기에 이렇게 말했지. 나는 브라흐만이다. 그래서 그것은 모든 것이 되었지. 이것을 깨닫게 된 신이라면 누구든지 정말로 그것이 되었네. 예언자의 경우도 그 밖의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 참으로 이것을 본 예언자 와마 데와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네. 나는 마노였고 태양이었도다." 

이제 이렇게 해서 브라흐만이 유일신이며 모든 것의 본질임을 이야기를 합니다. 

"진정으로 태초에 이 세계는 브라흐마 오직 하나뿐이었네. 하나이기에 그는 번성하지 못했지. 이윽고 그는 크샤트리아 계급이라는 더욱 우월한 형식을 창조하네."

 

브라흐마 보다 더 우월한 형식이 크샤트리아 라는 이야기예요. 자 이 말은 뭘까? 자기 지위를 내놓은 걸까? 아니야. 

교묘하게 브라흐만과 실질적 통치를 해서 실질적인 총칼의, 아 그때는 총이 없었지. 칼과 창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는 크샤트리아 아닙니까? 그죠? 그러니깐 브라만 사제는 정치 세력하고 악수를 해야지, 그래야 살아남지. 그러니까 악수를 하는 교묘한 이 방법을 택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월한 형식, 크샤트리아가 더 우월한 형식이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인드라 와루나 소마 루드라 파르지아나 야마 무리티요 이샤나 이런 신들 중에 그중에서도 크샤트리아들을 가장 높은 신으로 본 거예요. 


따라서 "크샤트리아보다 더 높은 것은 없다네. 그래서 라자수야 의식에서는 브라흐만도 크사트리아보다는 낮은 자리에 앉지."

이네들의 축제나 또는 제사 양식 속에는 이런 것이 있는 모양입니다. 저는 잘 모르겠는데. 브라만보단 크샤트리아가, 그 절대 왕이 더 높은 자리에 앉게 만듭니다 이렇게. 

"크샤트리아 계급에게만은 그가 이런 명예를 준다네." 그란 건 누굽니까? 브라흐마! 그죠? 중간에 그렇지만 역시 "브라흐만이 크샤트리아의 근원이지." 

“높게 앉아 있어도 니는 꼼짝 마라” 이 말이에요. 


"그러므로, 왕은 지배권을 갖고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근원인 브라흐마 계급에 귀의한다네. 그러니 브라흐만에게 해를 끼치는 자야말로 자기의 근원을 침해하는 자라고 할 수 있지."

“브라흐마를 건드리는 사람은 니 스스로 파멸한다 이” 이 말입니다. 꼼짝 못하게 만들어 놨죠. 근데 이것이 단순한 윤리가 아니라 이것이 진리라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자기 상관을 살해하는 자보다도 더 사악한 지식자 안에, 사악이라는 말은 선과 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야. 

"이 카스트 제도, 4계급 제도의 체계 이거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곧 사악한 것이다." 이렇게 몰아가 버립니다. 

 

"그는 아직 번성하지 못했지. 그는 비슈를 창조했네. 비슈라는 것은 비수나 바이샤 편미. 바스 루드라 아티냐 비수 베데와 마르트 처럼 여럿이 언급되는 신들이 그들이지. 그는 아직 번성하지 못했지. 그는 푸시안 같은 슈드라, 바이샤 다음에 슈드라 천인계급, 계급을 창조했네. 진정 이 세계는 푸시안이지. 왜냐하면 그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양육하니까." 

브라흐마의 또 하나의 기능으로 본 거야. 이 천민 계급을. 

 

"그러니까 니가 지금 천민 계급으로 태어났다고 해가지고 서러워할 것 하나도 없다. 양육한다는 으리으리한 거대한 힘을 지니고 너희들은 태어난 것이다. 그것은 그리고 또 곧 브라흐마의 전변일 뿐이다." 

이렇게 해서 객관성, 이 카스트 제도에 객관성을 부여하게 됩니다. 

 

자, 여기에서 그 다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아직 번성하지 못했지. 그는 다르마(dharma) 빨리어로 말하면 담마(dhamma, 法) 법이라는 더 훌륭한 형식을 창조했다네. 이 법이 크샤트리아 계급의 신이지. 따라서 법보단 더 높은 것은 없다네." 

이때까지 말한 모든 것이 담마다 라는 거예요. 진리라는 거예요. 단순한 윤리나 도덕이 아니라는 겁니다. 설정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아주 숭악한 놈들이죠. 

이것이 그 당시 형성돼서 지금까지, 그러니까 카스트 제도를 무너뜨리든가 이것은 도저히 못하게 돼 있어. 힌두가 무너지지 않는 한은. 브라만교가 무너지지 않는 한은. 왜 이거 자체가 진리 체계니까, 담마니까. 

 

나머지 또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마는, 이때까지 이야기하고 있는 이 "본체 사상"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카스트 제도" 이 2개를 아울러서 여러분들은 꼭 이해를 하고 주목을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 우파니샤도 그리고 흔히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바가와드 기타, 바가바드 기타에 보면은 이런 내용들이 쭉 적혀있는데, 요 내용은 크게 나눠서 3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트만이라는 하나의 개념 속에서 결합되는 자아(自我). 아까 이야기했죠. '아트만, 지와 아트만, 자아'와 세계의 형이상학 즉 세계의 본질 세계의 본체라고 할 수 있는 '브라흐마' 요 2개는 동일한 것이다 라는 것에 우리는 주목을 해야 되구요. 


또 하나는 4계급이 카스트 제도와 그것을 기초로 한 사회 철학, 이건 단순한 설정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있는 사회적 제도가 아니다. 영원불변의 진리 체계로써의 사회철학이다. 뭐가? 카스트 제도가! 이것을 우리 또 주목을 해야 되고요. 

또 하나는 브라흐만으로 통칭되는 그 카스트 제도에 근거한 도덕적 이상 그것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곧 도덕이다. 

이 밑에, 이 4계급 밑에 불가촉천민 계급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불가촉천민계급은 뭡니까? 이거는 뭐 아예 인격도 없는 것이죠. 

 

이런 우파니샤드의 사상가가 이런 자아 · 아트만 개념을 사용하는 데 흥미를 가지고 있던 것은 인간의 확실성이나 또는 인식의 합리적 정당화를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우주의 기원, 창조 그리고 또 연속성 이것을 해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이 브라흐만 아트만이 형의상학적 주체임과 동시에 형이상학적 객체도 되는 것이라는 겁니다. 

이것을 불교는 전적으로 부정을 했습니다. 

그런 아트만 그런 브라흐마의 본체 그런 것은 없다. 없다. 그리고 고정적인 것은 없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그 정도 브라흐만 사상에 대해서는 아마 그 정도 이해를 하고 넘어가도록 하십시다. 더 깊이 들어가면 이제 인도 철학 자체를 해야 되니까. 


그다음에는 이런 절대주의적 사고방식, 식자라면 지인이라면 이걸 하루 이틀도 아니고 4500년 동안 지속됐기 때문에 이걸 가만히 놔놓겠습니까? 이거? 그러니까 끊임없는 이거에 대한 반발이 사상 체계를 내놓기 시작을 합니다. 

그것이 이제 불교에서는 그 육도외도, 육파외도로 표현이 되지요. 

그런데 이 브라만 사상에 대한 안티 사상들이 인도에 자세히 기록된 문헌은 없습니다. 비교적 그래도 자세하게 보이는 것은 두 기록밖엔 없습니다. 한개는 불교 경전에 있고요, 하나는 자이나교 경전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걸 통해서 쭉 유추를 해 본 결과 여러 가지 안티에 대한 사상 체계의 핵심을 우리가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면 이런 절대주의적 사고방식과 정면으로 도전하는 새로운 사상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 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브라만 사상에 대한 안티의 대표적인 것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되는 것은 '유물론'입니다. 

물(물질)이 곧 유일하다. 뭐 정신 마음 이런 거 다 실재하지 않는다. 실재하는 것은, 실재한다는 것은 실체라는 말이죠. 실체, 실체라는 말은 즉 본체라는 말입니다. 같은 맥락이지요 다. 

이것은 브라흐마도 아트만도 이런 건 다 없다. 다 허위이다. 이 물질을 이루고 있는 물질도 겉에서 보이는 것은 다 실재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그렇습니다.

이걸 분석하게 되면 분해하게 되면 지금 우리의 이런 모습을 형성하고 있는 최소 단위는 우리 눈에 보이는 이런 것들이 곧 최소 단위가 아닙니다. 지금 이 탁자는 분석해보면 이거 다 석유 제품에서 나온 것 아닙니까? 탄소화 수소로 되어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그거에 대한 조건적 조건에 의한 결합일 뿐이다 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그거는 실재하지 않는 거죠. 실재라는 것은 영원성을 지녀야 합니다. 그죠. 

 

자, 이런 우리가 본체나 이런 철학 강의를 할 때 절대 놓치지 말아야 될 것, 우선 용어로서 놓치지 말아야 될 것이 요 3개는 같은 언어라고 그랬죠! 

이 뜻은 뭐냐? 시간적으로 영원해야 한다. 공간적으로 고정적이고 독립적이어야 한다. 존재적으로 유일해야 한다. 본체가 2개 3개면 이미 그건 본체가 아니죠. 그렇잖아요? 

네 번째 자기 원인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원인과 결과가 동일해야 한다. 결과 안에 원인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고걸 본체라고 한다고 그랬습니다. 

요걸 항상 좀 여러분 좀 주지하고 계십시오. 

이것이 성립되지 않을 때는 본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브라흐만 사상에서 브라흐만이 본체라는 것을 이런 걸 지녔다 라는 거예요. 현대 종교에서 기독교나 개신교의 가드(god)라는 것은, 가드라는 것 그 가드가 타락돼 버려서 그렇지, 타락이라는 것은 인간이 설정해 놓은 걸로 돼버려서 그러는데, 원래의 가드 이건 또 다릅니다. 역사적 가드는 다릅니다. 아까 이야기했죠. 유대교에서의 가드라는 것은 전쟁신이었다. 

근데 이것이 인자 고급화되면서 고급 종교화되면서 뭐로 귀착되느냐? 본체로 귀착이 돼버려요 본체로. 이 본체라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이런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신이라고 합니다. 

근데 불교는 그런 것은 없다 라고 주장을 하는 것이죠. 

 

요런 이런 프레임을 이거는 프레임이라기보다는 그 언어가 가지고 있는 정의를 여러분은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앞으로 철학, 그러니까 불교철학이든 어떤 철학이든 철학 자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특히 이제 동양철학을 제외한, 동양철학은 처음부터 본체라는 개념을 부정합니다. 그런 면에서 철학적인 측면에서 그래서 동양 사상이 우수한 것이거든요. 

동양에서는 본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개념은, 흔히 노자 도덕경, 도를 도라고 할 때는 이미 도가 아니다. 이렇게 돼 버렸거든요. 

 

자, 그러면 유물론은 모든 물질은 다 허위다. 실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최소의 요소가 있다. 요소 엘리먼트. 마치 우리가 원소 지금 현대 과학은 모든 물질을 이루고 있는 원소가 있다고 주장을 하죠. 거기 98개인가 아마 그럴 겁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발견된 것은 103가지인가 이런데 98가지를 제외한 것은 실은 원소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건 인위적으로 인간의 화합 반응 속에서 만들어진 겁니다. 만들어진 것. 그래서 자연 상태에서 원소는 98개인가 그것이 원소입니다. 

 

그와 비슷하게 그와 같은 개념으로써 "모든 물질을 이루고 있는 기본 요소가 있다. 그것이 그게 지수화풍이다"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지수화풍은 실재한다. 이것은 허망한 것이 아니다. 허위가 아니다. 그리고 이 지수화풍이 결합해가지고 수많은 존재를 만들고 있다. 그러니까 이 존재에는 원 바탕이 지수화풍에서 나왔기 때문에 결합체 이 결합체 자체는 실재하지 않는다. 실체하지 않는다. 

 

자, 그러면 이럴 경우에 우리가 살다가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죽으면 죽음이 별로 의미가 없어 우리 신체가 지수화풍으로 돌아가는 거 외에는 의미가 없는 거야. 

생명? 생명이라는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뭐냐? 지수화풍의 결합에서 나온 것 뿐이라는 거예요. 생명이란 것을 별도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마음도 마찬가지예요. 마음도 물질이라고 본 겁니다. 물질이라고 보는 겁니다. 영혼? 물질이에요. 지수화풍의 결합일 뿐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실재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이 일단은 유물론입니다. 

그래서 유물론자들은 물질을 우주의 궁극적 사실로 간주했으며 의식 현상까지도 모든 현상과 같이 포함되어서 물질적 요소의 변형으로 보았다. 


자, 그런데 이런 유물론에도 2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모든 물질을 이루고 있는 것은 지수화풍이라는 요소만이 본질이고 그 나머지는 다 허위이다. 그러기 때문에 자성(自性) 스와바와, 자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지수화풍 밖에 없다. 지수화풍밖에는 없다. 그죠. "지수화풍은 영원한 것이고, 독립적인 것이고, 유일한 것이고, 자기 원인적인 것이다"가 됩니다. 

그 나머지는 이런 것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자, 그런데 여기에서 이제 요런 언어상에 앞으로 우리가 불교 공부를 할 때 우리 한국불교에서 많이 들어왔지 않습니까? 수행을 한다는 것 참선을 한다는 결국 자성을 보는 것이다. 그죠?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지요? 그러면 그 말은 헷갈리지 않습니까? 좀. 

불교는 뭡니까? 

이러이러한 것이 자성 이런 본체가 없다. 본체가 없다. 이것을 무아라고 하거든요. 무아를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다시 말하면 좀 더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면 자성이 없다 라는 것을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근데 한국 불교에서는 이때까지 자성을 보아라 라고 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한국 불교에서 말했던 자성을 보아라는 그 자성이 스와바와적인 그런 의미의 자성이라면 그거는 잘못됐다 라는 겁니다. 그건 개념적으로 잘못됐다는 겁니다. 

다만 그 존재가 가지고 있는 성품, 그 존재의 성품을 보완하는 의미에서 자성이라는 단어를 썼다면 그거는 얼마든지 논의될 수가 있다. 근데 이런 의미, 본체적 의미의 자성을 보아라고 했다면, 그거는 이때까지 우리 한국 불교가 잘못된 것이다. 분명히 알고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용어란 것이 중요합니다. 용어에 대한 확실한 개념, 동일한 언어를 써도 어떤 의미에서 썼느냐, 이거에 따라서 전혀 우리가 나아가야 될 방향이 달라진단 말입니다. 

어차피 우리는 이런 철학적 개념, 개념적 지혜는 언어를 통해서 우리는 전달받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죠? 자, 교학과 수행이라고 했습니다. 이 2개는 동시에 우리는 해야 된다고 이야기를 했지요? 첫 시간에. 그러면 개념을 통해서 부처님께서 우리한테 해주신 진리체계 즉 무아니 무상이니 연기니 이런 것을 개념을 통해서 공부할, 처음에 임무는 할 수밖엔 없습니다. 

근데 그 개념은 뭡니까? 뭐로 드러납니까? 언어로써 드러납니다. 그러니까 언어가 가지고 있는 내용이 오해를 불러일으키면 우리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강의의 중요성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자성이라는 의미를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이런 유물파 유물론 중에서도 이런 파, 이거는 허무주의입니다. 

아무런 도덕이나 무슨 이상이나 윤리나 이것이 의미가 없는 거죠. 도덕도 또한 존재하지를 않아요. 존재하는 것은 존재자로 존재하는 것, 즉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뭐냐? 지수화풍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죽음도 의미가 없고, 심지어는 해탈이니 뭐 윤회니 이것도 의미가 없어. 효도 충성 우정 이것도 의미가 없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심지어는 살인까지. 

 

왜? 누가 칼을 가지고 내 몸을 찔렀어. 나는 죽었어. 혹은 시체가 몸이 두동강이 났어. 그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칼이라는 물질이 몸이라는 지수화풍의 결합체를 쓱 지나간 거 외에는 그 이상의 의미는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거는 뭐야? 허무주의가 되는 거예요. 염세주의, 허무주의. 

바로 이런 사고방식이 아까 이야기했던 브라흐만 사상의 철두철미한 반대에 있게 되는 거예요. 브라흐만 사상의 철두철미한 반대. 허무주의 염세주의. 

이 불교는 브라흐만 사상에 대한 안티입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안티는 아니거든. 그야말로 물리적으로 여기 플라스가 있고 거기에 대한 안티 마이너스 이런 개념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유물론은 그런 의미의 안티예요. 

 

자, 그런데 같은 유물론 중에서도 이런 파가 있습니다. 지금 이야기한 이런 유물론이 가지고 있는 철두철미한 또 다른 의미의 절대적 환원주의를 거부하고, 물질적 요소뿐만이 아니라 그 물질적 요소 즉 지수화풍이 결합하고 있는 이 신체, 바디, 피지컬 바디 이것 또한 실재한다라고 보는 유물론 사상이 있었습니다. 


앞에 유물론은 지수화풍 그것만이 실재하기 때문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각적 경험 이것은 허망한 겁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겁니다. 

근데 두 번째 유물론에서는 지수화풍의 결합체인 신체 피지컬바디 이것은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감각적 경험을 중요시 한 거예요. 이거는 실재한다. 이것 역시 실재한다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네들은 7요소는 실재한다. 즉 지수화풍과 고-고통, 락-기쁨, 그리고 생명 이런 것도 또한 실제로 구성되어 있다. 그 결합체가 곧 인체지요. 


그래서 인체도 굉장히 중요시하게 됩니다. 

이런 자에게 살인은 굉장히 지금 앞에서 보았던 유물론과는 전혀 다른, 이것이 실제 우리 몸이 실재하기 때문에 실재한다는 이 자체가 자연이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칼이 자연의 성품을 위배한 것이니까. 그건 대단히 도덕적으로, 탈도덕적이고 탈윤리적인 것이 돼 버립니다. 

그래서 같은 유물론이라도 이렇게 전혀 방향을 좀 달리하는 유물론이 있다는 것도 좀 알아두시고요. 

자, 그런데 그러나 이 두 학파는 인간의 사후 연속성을 공히 다 부정을 합니다. 

윤회를 거부했습니다. 윤회를 거부합니다. 

 

특히 그 전반부의 유물론의 대표적인 것이 뿌루나, 뿌루나 까사빠, 법구경에 보면 붓다와 신통력을 견주어가지고 패배하게 됩니다. 뿌루나 까사빠가. 

철두철미한 유물론자였거든요. 그래서 모든 미덕을 부인하였고 선악의 구별은 인간이 멋대로 정한 것이고, 그다음에 업에 대한 과보도 없고 도덕 관념을 부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아까 이야기했던 신체 이것은 실제 하는 것으로 본 그런 유물론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인간의 영생에 대한 믿음에 근거한 도덕, 영원히 사는 영원히 존재하는 이런 것만 무의미했지, 현실적인 감각 경험은 중요하게 생각을 했다라는 거예요. 같은 유물론이라도 진일보된 개념적인 유물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유물론자들은 절대주의적 사고방식인 브라흐만 사상, 브라만 사상이 가지고 있는 절대주의적 의식 구조, 이것을 철두철미하게 부정을 한다는 데에서는 대단한 기여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물질이나 또는 인간의 신체를 궁극의 실재, 다시 말하면 본체로 인정한 것은 아무래도 보편적 타당성 즉 객관성 이거에 대한 포기는 하질 못하겠다라는 어떤 한계성, 이런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불교는 과감하게 그것을 부정해버리거든요. 불교는 지수화풍을 인정을 하되 물질 자체의 뭡니까? 본체 이것은 부정하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이 차이가 있다는 거예요. 

부정을 했다 해가지고 그러면 아무것도 성립되지 않고 모든 것이 허망한 것이냐? 아니다! 존재는 존재한다!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존재에 대한 본체는 부정되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뭡니까? 상호의존성.


상호의존성이라는 이 위대한 철학을 발견함으로써 불교는, 고따마께서는 양쪽 즉 "브라흐만 사상의 절대주의"와 "유물론의 허무주의" 이 양쪽을 다 극복해냅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의 핵심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돼. 이 얘기에 불교의 알파와 오메가가 있습니다. 

 

그다음에 또 하나 들여다볼 것은 잠깐 좀 쉬고 하십시오. 1시간 정도 됐네요. 




* 출처 원문: https://cafe.naver.com/buddhayana1/2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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